원양어선 필수선원 못 채운 불법운항 만연


침몰한 사조산업 '501 오룡호'가 법적으로 반드시 승선시켜야 하는 필수 선원을 채우지 않은 채 출항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원양업계에 이같은 불법 운항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 선원의 원양어선 기피 현상 등으로 말미암아 법에 정해진 필수 승선인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항하면 선박 안전에도 영향을 미쳐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큽니다.

사조산업은 지난 3월 오룡호에 승선하는 11명의 내국인 선원 가운데 기관부 필수인력인 기관장, 1등 기관사, 2등 기관사 중 2등 기관사를 제외한 채 승선공인을 신청했습니다.

승선공인이란 선원이 배에 승선할 때 신분과 직책을 관할 항만청이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오룡호는 이처럼 필수 선원 가운데 일부가 타지 않은 채 운항하다가 사고가 났고, 자칫 피보험자인 선사의 과실이 인정돼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원양업계에서는 최저 승무기준을 지키지 않은 이런 사례가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번 출항하면 몇 개월씩 이어지는 고된 노동에 내국인 선원들이 원양어선 승선을 기피하면서 선원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선사나 선장은 법정 필수 선원을 구하다가 결국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대로 출항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원양어선을 탔던 선원들의 증언입니다.

선원 인력난에 더해 경영난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려는 선사들이 필수 선원 없는 불법 운항을 부추기면서 최저 승무기준을 지키지 않는 사례가 더욱 늘고 있습니다.

이같은 원양어선의 만연한 불법운항 이면에는 관할 당국의 형식적인 승인절차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항만청은 승선공인 신청이 들어오면 이름, 직무, 해기사 면허 등 기본적인 선원 정보만 확인한 채 승인을 내주고 있어 제대로 된 검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의 한 관계자는 "하루에 100여건 이상, 선원이 승·하선 때마다 수시로 접수되는 승선공인을 법적 요건을 갖춰 시행하기에는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서류심사만 하도록 돼 있는 제도상의 문제"라고 항변했습니다.

이 때문에 승무기준을 위반한 선사에 대한 단속과 적발은 주로 사후에 이뤄졌습니다.

해양경찰은 지난 2009년에 국내 원양선사 20개 업체를 상대로 법정 승무기준 준수 여부를 조사해 11개 업체의 원양어선 56척이 1등 항해사 등 자격을 갖춘 직원 없이 운항한 것을 적발해 선사 대표를 불구속 입건하는 등 부정기적으로 단속해왔습니다.

최저 승무기준 위반으로 단속되면 선박직원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대부분 불구속 입건되거나 벌금형에 그치고 있습니다.

주로 남태평양에서 참치연승어선을 타는 등 선원생활 30년 경력의 한 선장은 "원양어선들 가운데 필수 선원을 다 채운 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다만 그동안 큰 사고가 나지 않아서 보험금 지급 등의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전영우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교수는 "원양어선 승선 기피현상, 형식적인 승인절차, 선사의 경영난,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에 그치는 처벌 때문에 최저 승무기준을 채우지 않은 불법 운항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결국 선박사고 위험만 높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현실적인 법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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