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논픽션] '액트 오브 킬링'이 묻는다…악마도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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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위너 포스터'라 명명한 영화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의 스페셜 포스터는 월계관으로 지면의 1/3을 채우고 있다. 국제영화제 수상의 징표이기도 한 이 마크는 언뜻 세어 보아도 70여 개 남짓. 2013년에 만들어져 전 세계를 약 1년간 순회한 이 영화는 어떤 작품이길래 이렇게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을까.

'액트 오브 킬링'은 재현 다큐멘터리다. 그 중심에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를 피로 물들인 대규모 학살 사건이 있다. 흥미로운 건 재연의 주체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점이다. 감독이 시도한 이 발상의 전환은 보복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이 영화 출연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차선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최선이 됐다. '액트 오브 킬링'은 대학살의 리더로 하여금 액팅(연기)을 하며 킬링(살인)의 끔찍함을 깨닫게 하는 소름 끼치는 순간을 선사한다.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영웅이 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악당이 있었다. 독재자, 테러리스트, 살인마 등 다양하게 불렸으나 그들은 모두 악을 자행한 주범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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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은 악의 대리인이 재연하는 악의 연대기다. 200만 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민간인들이 빨갱이로 몰려 살해당한 끔찍한 사건에는 프레만(Freeman)이라는 무장단체 조직과 안와르 콩고라는 인물이 있다.

테러리스트이기 전에 할리우드 영화를 동경한 영화광이었던 콩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하고 싶다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제안에 기꺼이 출연을 결정한다.

지금까지도 국민 영웅의 대접을 받으며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콩고는 자랑스레 50여 년 전 '그날들'을 회고한다. 콩고는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날 자신이 왜 그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고, 어떻게 죽여나갔는지, 심지어 피를 덜 내면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자신만의 방법을 자연스레 시연하기도 한다.

콩고를 비롯한 가해자 일당의 각본과 연출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는 스스로 업적을 찬양하고, 명예를 격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피해자들이 "일찍 죽여서줘서 고맙다"며 가해자들에게 메달을 걸어주는 판타지 장면도 삽입된다.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폭력이나 살인 행위보다 더 끔찍한 것은 우매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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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콩고를 비롯한 학살의 주역들로 하여금 피해자를 체험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신나게 연기를 하지만, 콩고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반성과 회한의 순간과 맞하게 된다. 죽인 사람들을 이따금씩 꿈에서 만난다는 콩고는 그들의 눈을 감겨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한다. 

'액트 오브 킬링'의 내러티브가 가지는 놀라운 힘은 인물이 사건을 회고하는 태도와 감정의 변화에서 나온다. 어느 순간 콩고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토악질을 해댄다. 그도 인간이었음을 목격하는 순간 관객들은 서늘한 공포를 느낀다.

영화에는 호숫가 앞 거대한 물고기 조형물 옆에서 춤을 추는 가해자들의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감독은 이 장면은 죽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역설적으로 성경에서 물고기는 구원을 뜻하는 이미지로 쓰인다. 가해자들은 훌라춤을 추며 죽음의 축제를 벌이지만 그들은 물고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묻는다. '악마도 사람입니까?'라고. 과연 악어의 눈물 앞에 동정표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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