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 천만 원이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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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써 본 경험이 없는데 6주 수업 들어서 가능한가요?”

“네. 대부분 처음 써보시는 분들이 수업 들으세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개별 코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 드리거든요. 출판까지 보장됩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전화 상담을 해봤습니다. 6주만 수업을 들으면 책을 낼 수 있다, 특별한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작가가 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생을 역전할 수 있다, 달콤한 광고로 도배된 수강 모집문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광고는 이렇게 하더라도 전화로 문의하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초보자에게 “6주 수업을 들으면 책을 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짧은 상담 동안 “그게 가능한 일이냐”며 불안해하는 제게 상담원은 끊임없이 확신을 주려 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 출판까지 보장된다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책 쓰기 과외’를 하는 업체들은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 가운데 수강생이 많은 업체를 위주로 수강료를 알아봤더니 어마어마한 가격대가 나왔습니다. 일단 A업체는 6주 수업에 5백만 원. 매일 수업을 해주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고작 두세 시간 수업을 해주고 받는 돈입니다. 수강료가 시간당 30만 원이 넘는 꼴입니다. 또 다른 업체에 전화했더니 수강료가 ‘조금 센’ 편이라며 12주 수업에 1천19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이 정도 돈이면 대필을 시키고 말지, 라는 생각이 들 법합니다.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수강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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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출판 사기

“첫날 만나자마자 다음에 서문하고 목차를 한 번 적어 오래요. 그래서 하나도 안 배웠는데 어떻게 적느냐 그랬더니 서점에 가서 비슷한 주제의 책을 쭉 살펴보면 나온다는 거예요.”

“그냥 수강생이 알아서 다 하는 거예요. 그 흔한 첨삭 한 번 안 해주고 그냥 PPT로 수업 몇 번 하는 게 전부더라고요.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건 출판사 이메일 리스트 준 것?”

수강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더니 하나같이 돈을 날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약속했던 책 쓰기 비법은 여느 강의에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에 불과했고, 실제로 책을 쓰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첨삭 등의 체계적 지도는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 수업을 듣고 책을 낸 사람들도 있지만 ‘100% 출간 보장’이라는 약속과는 달리 책을 못 낸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출판 여부는 오롯이 수강생의 글쓰기 역량에 달려있었습니다.

약속했던 책 출간에 성공하지 못해도 수강료를 환불받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일단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데다가 수백만 원을 강사 개인의 통장에 계좌이체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몇 주만 수업을 듣고 나머지 수업을 철회하겠다고 하는데도 환불을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허위·과장 광고로 사기를 당했다며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수사기관의 판단을 봐야겠지만 아직까진 수강생들의 피해를 구제할 만한 수단이 없는 상황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거의 마지막 목표인 거죠. 저한테는 책이라는 게 정말 소중하거든요. 지금은 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책만 읽고 있는데, 이제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 걸 보고 싶은 거예요. 그게 큰 꿈인 것 같아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실 취재하면서 들었던 궁금증은 ‘왜 그렇게까지 책을 내고 싶을까?’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천만 원을 쓴다,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조심스레 질문을 꺼냈더니 수강생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명예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책을 읽다 보니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는 겁니다. 컨텐츠 소비자로서 궁극엔 직접 생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됐습니다. 이른바 ‘책 쓰기 과외’ 업체들은 이런 마음을 공략한 셈입니다.

전문 작가들은 초보자가 한두 달 만에 책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미 컨텐츠와 글쓰기 실력을 겸비한 작가들도 석 달 이상 소요되는 작업을 초보자가 몇 주 만에 해내긴 어렵다는 겁니다. 설령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책을 낸다고 해도 그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과 다름없습니다. 작가에게 남는 게 없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출판시장의 질을 떨어뜨릴 개연성이 높습니다.

진정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보다는 시대를 넘어 기억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이름의 본질이 뭔지 고민한다면 허황된 목표를 약속하는 광고에 속아 수백만 원을 허공에 날리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8뉴스] 6주 과정 책쓰기 과외 1천만 원…"돈만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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