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애기봉 성탄 트리…"온누리에 평화 대신 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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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경기도 김포 애기봉 등탑이 뽑힌 자리에 올 성탄절에는 성탄 트리가 세워질 것 같습니다. 해병대가 지난 10월 애기봉 등탑을 철거해서 올 겨울엔 부질없는 남북간 등탑 점등 시비가 없을 줄 알았는데 헛 기대였습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가 성탄절을 즈음해 애기봉에 9m 높이의 성탄 트리를 설치하게 해달라고 군에 요청했고, 군은 이를 수락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소외된 곳에 대형 트리를 세워서 평화를 기원하겠다는데 말릴 명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군은 한기총을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북한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고 자칫 국지 도발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트리가 불을 밝힐 동안 엄동설한, 강화된 경계 태세 속에서 고생할 장병들을 생각하면 애기봉 성탄 트리는 그저 고난의 불빛일 뿐입니다.

● 2012년 12월 애기봉에선…

2012년 12월 성탄절 이브에도 애기봉 등탑 점등식이 계획됐습니다. 당시 북한은 전통문을 보내 “애기봉에 점등하면 즉각 타격한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럼에도 점등식은 강행됐습니다. 당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인들이 애기봉 등탑 아래서 점등을 기다리던 그 순간, 북한군은 실제로 타격을 염두에 두고 화기를 움직였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습니다. 2010년 11월 연평도에 이어 2012년 12월에도 포격전 발발 직전까지 남북 대치국면이 치달았습니다.

그때와 똑같은 사태가 또 벌어지게 생겼습니다. 북한은 머지않아 성탄 트리 점등에 시비를 거는 언동을 할 것입니다. 점등식을 한다는 23일에는 애기봉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군대가 서로를 겨냥한 채 초긴장 상태로 돌입할 것이 뻔합니다. 다행히도 아무 탈 없이 점등식을 마친다고 해도 해병대 2사단 장병들은 트리가 불을 밝히는 2주 간 가장 높은 전투대비태세를 갖추고 애기봉 트리 주변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만큼 장병들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해병대 2사단이 맡고 있는 김포 지역의 방어태세는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는 평화를 기원하며 애기봉 성탄 트리를 설치한다고 하지만 애기봉 트리가 가져오는 현실은 긴장과 포격전 및 인명 피해 가능성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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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애기봉

● 이왕 뽑은 등탑인데…

해병대는 지난 10월 정치적 의도 없이 안전 때문에 애기봉 등탑을 철거했습니다. 그때 청와대는 군 당국에 철거 이유를 캐묻고 논란의 확산을 막으라는 지시를 수차례 내렸습니다. 이왕에 등탑을 뽑았으면 북한에 크게 선심 썼다고 생색내면 그만일 것을 아마추어처럼 일을 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기봉 논란도 가라앉는 것 같았는데 이번엔 기독교 단체가 나섰습니다. 사실 9m 트리라면 북한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철거된 18m 등탑 절반 크기이니 그도 그럴 만합니다. 북한에 괜한 시비의 구실만 제공하고 장병들만 고생시킬 뿐입니다. 자칫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도 발생합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가 북한을 자극하고 성가시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있을 리는 없겠지요. 북한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라면 모를까 단지 종교적 이유라면 애기봉 성탄 트리 설치는 아무 의미도, 정당성도 없습니다. 애기봉 성탄 트리는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수(惡樹)가 될 수 있습니다. 애기봉 성탄 트리 설치를 재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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