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빙속 여제' 이상화, 무릎 수술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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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이었습니다. 해발 1,300m인 강원도 태백에서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국가대표 34명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출발 소리와 함께 깎아지른 듯한 언덕을 뛰고 또 뛰었습니다. 땀범벅이 된 얼굴에 숨은 턱에 찼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습니다. 잠시 걷기라도 하면 이내 코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산소가 부족한 고지에서 7km의 산길을 달린 선수들의 몸은 녹초가 됐습니다. 제 눈에는 특히 '빙속여제' 이상화 선수가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무엇보다 성치 않은 왼쪽 무릎 때문이었습니다. 이상화는 무릎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채 달렸습니다. 제가 "무릎이 좋지 않은데 괜찮느냐?"고 묻자 "늘 그렇죠 뭐"라고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이상화가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연골에 무리가 가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정진욱 박사는 "우리나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상체 훈련보다 하체 훈련에 집중해왔다. 점프를 비롯해 무릎에 무리가 가는 훈련을 많이 하는 반면에 긴장을 완화시키는 훈련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동계올림픽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상화는 왼쪽 무릎에 물이 찬 채로 지난 시즌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골이나 연골판이 손상되면 약해진 부위의 세포들이 자기방어(완충효과)를 위해 물을 배출하는 증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상화는 당초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무릎 수술을 받을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각종 행사 참석과 여러 일정으로 수술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상화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번 시즌이 끝나면 수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올시즌이 내년 3월 하순에 끝나니까 이르면 내년 4월쯤이 될 것 같습니다. 

이상화의 무릎 수술에 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합니다. 먼저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출전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수술하지 않고 1~2년 정도 더 뛴 뒤 은퇴하면 된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수술은 불가피하다. 2018년이면 이상화의 나이가 29세가 된다. 엄청난 강훈련을 쌓아야 올림픽 3회 연속 우승이 가능한데 지금 무릎 상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2015년 4~5월쯤에 수술한 뒤 1년 정도 재활을 거쳐 2016년 늦가을부터 출전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해야 한다."

수술하지 않아야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올림픽에 무려 6회 출전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 이규혁 SBS 해설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화는 기본적으로 무릎을 너무 많이 썼다. 어릴 때부터 무리했다. 의사들로부터 수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지가 꽤 됐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 보면 확률이 떨어지고 좀 위험하다. 소치 올림픽 전에도 수술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안 된다고 말렸다. 이제 와서 뭐 어떻게 하겠는가? 몇년 안 남았는데 보강운동 하면서 계속 좀 안고 가야 한다. 요즘 코치 감독 선생님들이 강압적인 훈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화될 수 있는 확률은 낮다고 본다."  

이 분야 권위자인 서울 백병원 정형외과 김진구 박사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상화 선수의 현 상태를 볼 때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할 급박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무릎 상태에 대한 정밀한 검사와 진단을 한 뒤 수술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이상화 선수의 의지, 장래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만약 수술하더라도 수술 자체는 물론 이후의 재활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결단은 이상화가 내려야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고민이 만만치 않습니다. 수술한다고 했을 경우 그 이후 경기력이 이전만 같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가 집도해도 몸에 칼을 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후유증은 불가피하고 또 장기간의 고된 재활 훈련을 소화해야 합니다. 수술한 뒤에 기대했던 만큼 무릎이 좋아져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최선이겠지만 그렇게 될지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모험인 것입니다.

 그럼 수술하지 않아야 할까요? 이 선택을 해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상화의 현재 훈련량이 예전만 같지 못한 것은 맞습니다.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보다는 사이클 훈련을 주로 합니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파워가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상태로 1년 정도는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창 올림픽은 앞으로 3년2개월 뒤에 열립니다. 그때까지 무수히 많은 국제대회를 치러야 하는데 지금 무릎으로는 몹시 벅차 보입니다.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하나 확실한 사실은 그 결정을 내년 봄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일정을 감안하면 2015년 여름 이후에는 수술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상화는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올시즌 2차례의 월드컵에서 여자 500m에 모두 4번 출전해 금메달 3개를 따냈습니다. 내년 3월까지 남은 대회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연골이 손상된 무릎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강훈련도 해야 하고 금메달도 따야 하고 또 수술을 할지 안할지도 미리 결정해야 합니다. 이번 시즌은 '빙속 여제'에게 무릎도 가장 아프고 머리도 가장 지끈지끈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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