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중의원 해산, '정치스승' 고이즈미 모방했나

외조부 기시 전 총리, 아소 전 총리 실패사례는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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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의원 해산과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한 것에 역대 총리의 사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스스로 중의원 해산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고 규정하고 재임 중 두 차례의 해산을 단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주목받는다.

그는 총리 시절 아베 총리를 관방부(副)장관, 관방장관, 자민당 간사장으로 기용해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아베 총리도 고이즈미 전 총리가 '정치적 스승'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의원 해산과 관련해 두 사람의 발언이나 처한 상황 등에서 유사점이 발견된다.

아베 총리는 20일 상공회 전국대회에서 참석해 "우리가 추진한 성장전략이 잘못된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받으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이 발언이 아베 총리가 2005년 7월 15일 참의원 우정민영화 특별위원회에서 "우정민영화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국민에게 묻고 싶다"며 중의원 해산 의사를 표명한 것과 비슷하다고 21일 평가했다.

중의원 해산이 필요한지 논란이 생기는 것도 공통점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중의원을 통과한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중의원을 해산했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은 중의원에서 재차 가결하면 법률로 성립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바로 해산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로 여론을 몰아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아베 총리 역시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는 법안을 추진하지도 않고 증세 연기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묻겠다고 해산을 결정해 억지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런 점에서 아베 총리에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성공 사례인 셈이다.

반면, 앞선 총리의 실패가 아베 총리의 조급함을 자극해 결단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 중 한 명은 아베 총리의 정치적 '동지'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다.

2008년 9월 아소 총리가 취임했을 때 조기 해산 전망이 우세했으나 그는 경기 대책에 신경 쓰느라 기회를 놓쳤다.

결국, 2009년 7월 당내 반대파의 퇴진 요구에 몰려 뒤늦게 해산 카드를 던졌으나 민주당에 대패해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런 쓴맛을 본 아소 재무상이 이번에 아베 총리에게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이길 수 있을 때 선거를 하지 않아 후회했다"는 충고를 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유전자를 물려준 외조부 기시 전 총리는 1960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국회 비준을 강행하다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

기시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그때 과감하게 해산했어야 한다'고 밝혔고 아베 총리도 최근 외조부의 사례를 수차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가 갑작스러운 해산으로 야당의 허를 찌르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수법을 썼다는 해석도 있다.

아베 총리는 해산 방침을 공식화하기 전인 16일 호주에서 기자들에게 "나 자신이 해산을 언급한 것은 한 번도 없다. 지금 이런 표현을 바꿀 단계는 아니다"고 언급했다.

이는 1986년 6월 2일 중의원을 해산한 나카소네 전 총리가 해산 직전 기자회견에서 "현재 해산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지금까지 내 발언을 바꿀 단계는 아니다"고 한 것을 인용한 셈이라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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