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꿈을 찾아 떠나는 '학생 선수'들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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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꿈' 좇아 '짐' 싸는 아이들…

엘리트 교육의 병폐를 줄이고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점차 줄어드는 학교 운동부.

학교 운동부 존폐에 따라 짐을 싸서 떠나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절기 '입동'.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인 아침 7시경, 서울의 한 중학교 탁구부 학생들이 분주히 이사짐을 싸고 있습니다.

이 학교 탁구부는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표방하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학교 지원이 끊기자 팀 해체를 결정했습니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지원을 약속한 당진의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습니다.

[인터뷰:OO중 탁구부 선수 학부모]

"이 학교가 공립이다 보니까 교육청 눈치를 많이 봅니다. (팀에 부족한 점을) 보강을 하려고 하면 학교에서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지침에 의해서 규정상 안된다고 하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학교 체육관은 일반 학생과 대관 등으로 맘 편히 훈련조차 못 합니다.

[인터뷰:조기정, OO중 탁구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체육관을 항상 사용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매일 왔다 갔다 해야 해서 힘들었습니다."

[아나운서 멘트]

"꿈을 위해 정든 친구,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기자 멘트]

"네, 하지만 학교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OO중 탁구부 지도자]

"지방에 있는 탁구부는 전용 체육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 탁구부는 전용 체육관이 없는 상황이어서 선수들이 기량 훈련을 해야 하는 시간이 안 맞는 거죠. 학교측에서 지원이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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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탁구부 역시 곧 짐을 싸야합니다.

올해 전국대회 6관왕에 오른 이 탁구부는, 합숙훈련을 통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라 기숙사를 보수해 사용 허가를 받았지만, 불과 한 달 전 안전상 이유로 기숙사를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터뷰:00초 탁구팀 지도자]

"오로지 운동을 잘해보겠다고 제주도를 비롯해서 지방에서 다 올라왔는데 지금 대책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무 자르듯이 (기숙사) 다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아이가 지낼 곳을 마련해야하는 학부모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인터뷰:OO초 탁구부 선수 학부모]

"내년부터 기숙사를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집에서 통학하든지 학교 근처에 (집을 이사를 해서) 살든지 하라는 겁니다. 여의치 않은 아이들은 탁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렇듯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탁상 교육행정으로 운동부 해체를 결정한 학교가 또 있습니다.

전국체전 양궁팀 2관왕에 빛나는 울산 학성여고를 찾아왔습니다. 눈물의 마지막 금메달 사연을 듣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나운서 멘트]

"울산 학성여고는 2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양궁부가 유명하죠?"

[기자 멘트]

"네, 이달 초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단체와 개인전 2관왕을 차지하며 여고부 최강의 자리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선수와 지도자는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인터뷰:이승용, 울산 학성여고 양궁부 감독]

"전국에서 울산 학성여고는 양궁 명문학교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가슴 아파하는 겁니다. 고향을 잃는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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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윤옥희와 기보배를 누르고 1위에 오른 강채영도 이 양궁부 선수니다.

[인터뷰:강채영, 울산 학성여고 양궁부]

"우리 학교 (양궁부)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울산을 오게 되면 내가 운동했던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 많이 슬플 것 같습니다."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합니다.

[인터뷰:김연주, 울산 학성여고 양궁부]

"어른들이 조금 더 우리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 양궁부는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양궁부를) 남겨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울산 교육청은 '학업과 운동의 효율적 병행'을 명목으로 월평중과 학성여고 양궁부를 스포츠과학중고교로 통합시켰습니다.

[인터뷰:채창명, 울산 교육청 장학사]

"기존 (학교 운동부)에 있던 관행, 전통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이제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야 하는 의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나운서 멘트]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으니 의식부터 변해야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학교의 특성과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 정책이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습니다.

<2부> 한국형 스포츠 인재 육성의 길

[아나운서 멘트]

"학생들이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든 학교에서 쫓겨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나운서 멘트]

"결국 '학업과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교육 정책의 집착이 낳은 역효과라는 의견이 많은데요."

[기자 멘트]

"네, 교육부는 지난해 선진형 스포츠 인재 육성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운동을 중단하는 학생 선수들이 사회적 열등생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일반 학생들에게 체육활동 참여와 인성함양을 돕는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러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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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형 스포츠 인재 육성 정책의 핵심은 정규수업 이수를 의무화하고 운동시간에 제한을 둔다는 것입니다.

초중고 별 최저학력 기준을 만들어 성적에 따라 대회 출전을 제한합니다.

일일 훈련시간 규정을 두어 이행 여부에 따라 학교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가 주도의 엘리트 선수 육성 에서의 급작스런 정책 변화로 현장에선 혼선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정용철, 서강대 교수]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써 활동할 수 있게끔 기본적인 소양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들을 수업에서 가르치는 거죠. 수업시간에 앉아있고 예전보다는 더 낫고 이런 식으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일반인들처럼 하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패배감과 콤플렉스를 증폭시킬 뿐이고…"

[아나운서 멘트]

"취지는 좋지만 자칫 학업과 운동, 모두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전문가들은 클럽 스포츠와 학교체육의 연계가 그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공릉중학교는 클럽축구 '노원 레인보우 FC'와 연계해 축구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 학교 운동부가 갖는 한정된 지원과 운동시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임진수, 공릉중학교 교장]

"(다른 학교는) 운영비 지출 문제나 훈련시간으로 인해 (운동부) 운영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노원 레인보우 FC의 경우 운영경비를 실비로 받으면서 운동시간을 새벽이나 오후에 확보하기 때문에 학생의 학습권 침해가 전혀 없습니다."

운동과 공부가 모두 재미있어 졌다며 학생과 지도자들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김재현, 공릉중학교 축구부]

"축구부도 다른 학생들과 차별 없이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인터뷰:이준서, 공릉중학교 축구부 출신/FC서울 유소년팀]

"공부와 축구를 동시에 같이 하면서 운동도 재밌게 하고 공부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시스템들을 감독님이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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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경수, 공릉중학교 축구부 감독 교사]

"1년 반째 운영을 하고 있는데 정착이 잘 되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상당히 호의적이고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멘트]

"개별 학교를 넘어 정부차원의 움직임도 필요해 보이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대한체육회는 학교체육과 클럽스포츠의 연계를 위한 발전 방안을 준비 중 입니다.

[인터뷰:김재원,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장]

"고교 중점 학급 제라는 운영을 금년부터 실시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운동에 맞는 교육 과목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과도기에 있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공부와 운동의 합리적 균형을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고민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정용철, 서강대 교수]

"빨리빨리 이런 건 이제 그만하고 좀 천천히 가되 방향성을 가지고 지속했으면 좋겠고…30년 40년 동안 해 왔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는 생각 자체가 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 같고요. 길게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아나운서 멘트]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교육 정책은 입시를 포함해 손바닥 뒤집듯 잦은 변화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이 많잖아요."

[기자 멘트]

"네 맞습니다. 교육은 예전부터 백년지대계라고 했습니다. 진짜 '공부하는 학생 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

이 마음껏 뛰어노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선 좀더 책임있고 사려깊은 교육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할 것입니다."

[아나운서 멘트]

"철저히 준비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다시는 어린 선수들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향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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