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범구가 국회를 찾아온 이유는?

혼자가 불안한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보장 필요"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범구의 전동 휠체어에는 커다란 호흡기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안정적으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도록 마스크가 단단히 고정돼 있었지요. 5분만 넘어도 혼자서는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범구의 몸에 처음 이상이 생긴 건 다섯 살 때였습니다.

더 어렸을 때는 잘 걷기도 했지만 학교도 가기 전에 근육 장애 판정을 받았지요. 천천히 몸의 근육들은 제 기능을 잃어갔습니다. 32살, 저와 동갑인 범구는 결국 폐 근육까지 쇠약해지면서 7년 전부터 호흡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범구는 혼자 삽니다. 돌봐줄 형편이 안 되는 부모님이 마련해 준 집에서 살고 있지요. 돈도 법니다. 저작권보호협회의 일인데 주로 재택근무를 하며 한 달에 8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형편은 넉넉지 않습니다. 커다란 호흡기는 한 달에 두 번 청소하거나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한 번에 2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이런 범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활동보조원 이종선 씨입니다. 혹시라도 호흡기가 코에서 떨어지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사항이기 때문에 이종선 씨가 옆에서 지켜주고 있지요. 혼자서는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침대에 눕혀주고 뒤척이기도 힘에 부치니 자주 자세를 바로 잡아줍니다.

하지만 이종선 씨가 범구와 함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150시간이 채 안 됩니다. 현행법으로는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24시간 내내 활동 지원을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단체들은 24시간 활동지원 보장을 꾸준히 요구해왔습니다. 지난 4월 3급 장애인이라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던 송국현 씨가 화재로 사망했습니다. 6월엔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호흡기에서 제대로 공기를 공급받지 못한 오지석 씨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지요. 장애인단체들은 그래서 장애인활동지원법을 ‘송국현법’, ‘오지석법’으로 부르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취파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장애인들의 이런 바람을 담아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현행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1급 및 2급만 신청할 수가 있어서 활동지원 등급을 아예 삭제하거나 국가에서 지원받는 활동지원급여의 수준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양의무자 규정도 없애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하는데 본인이나 부양의무자의 생활수준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내게 하는 부조리도 막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24시간 활동지원 보조 등에 얼마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될 지 집계조차 안 돼 복지부의 반발이 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여당 역시 이러한 법안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국회에는 범구 뿐만 아니라 호흡기 사고로 숨진 오지석 씨의 어머니도 찾아왔습니다. 팔이 아파 잠시 병원에 다녀온 오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호흡기가...”라는 말을 내뱉고 끝내 숨졌다며 잠깐 오 씨의 옆을 비운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누리고 감내해야 할 복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정치권만의 논의가 아닌 최소한의 동의와 이해를 얻을 수준의 대타협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 씨 어머니의 눈물과 범구의 불안이 계속 반복돼선 안 됩니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