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신작시 "이제 나는 0이다"

시 전문 계간지 '발견' 겨울호에 발표


"나는 8·15였다/나는 6·25였다/나는 4·19 산중이었다/나는 곧 5·16이었다/그 뒤/나는 5·18이었다/나는 6·15였다/그 뒤/나는 무엇이었다 무엇이었다 무엇이 아니었다/이제 나는 0이다 피투성이 0의 앞과 0의 뒤 사이 여기"

고은(81) 시인의 신작 시 '자화상에 대하여'다

굴곡진 한국현대사와 함께하며 팔십여 평생을 삶아온 시인의 '자화상'에는 8·15 해방부터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등 역사가 새겨져 있다.

시를 쓴지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인은 마지막에 "이제 나는 0이다"며 자신을 철저히 비워내며 '무위'(無爲)로 돌아간다.

고은 시인이 시 전문 계간지 '발견' 겨울호에 '자화상에 대하여' '무위에 대하여'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 대하여' '유언에 대하여' 등 신작 시 12편을 발표했다.

"인류 각위 그대들이 끝내 지켜야 할 것/아래와 같다/내 발가락부터/내 손가락부터 이미 특수성일 것/내 별 볼일 없는 얼굴로 하여금/그 누구의 보편성 아닐 것"('유언에 대하여' 중)

"무엇을 하지 않다니/거지가 되거라/비굴산 도둑이 되거라/무엇을 하지 않다니/꽃 지거나/다음해/꽃 피거라/두견새 오래 울어라 무엇이거라"('무위에 관하여')

문학평론가 홍용희 씨는 "무위의 존재성을 노래하는 시적 화자는 어느덧 자신의 자화상으로 '0'을 표상화하고 있다"면서 "'0'은 무위의 시각적 표지"라고 해석했다.

또 "'0'의 없음은 있음의 반대가 아니라 있음의 모태이다. 모든 가능성과 소멸의 출발이면서 궁극이고 근원"이라면서 "실제로 고은은 비어있는 풀무와 같이 엄청난 문학적 양질의 생산성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발견' 겨울호는 고은 시인 외에 원로시인 허만하, 신달자, 정현종, 오세영, 정호승, 김광규, 정우영, 문태준, 이병률 시인 등의 신작 시도 소개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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