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 미국인 석방'…북미관계 돌파구 열리나

북한, 분명한 대화 신호…미국도 '화답'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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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억류한 미국인 세명 중 하나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을 전격 석방한 것을 계기로 꽉 막힌 북·미관계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이번 조치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되는데다, 미국도 이에 조심스럽게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가는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협상' 없이 파울씨를 석방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파울씨를 석방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아무런 대가없이 '선의'로 석방한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을 향해 분명한 대화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대가 없이 풀어줬다는 것은 미국이 이제 북한이 요구해온 사항에 화답을 하라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특히 외교소식통들은 북한이 제네바합의 20주년 기념일인 `10월21일'에 석방 결정을 내린 것을 의미있게 보고 있다.

워싱턴 내에서 대북 대화론이 서서히 부상하는 흐름을 겨냥한 고도의 정치적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 등 나머지 미국인 두 명을 계속 억류하는 것은 미국에서 더 실질적인 화답을 이끌어내려는 '협상용 카드'의 의미로 비친다.

특히 외교소식통들은 파울씨와 나머지 억류자 두 사람을 분리 대응하는 것이 북한이 최근 국제사회를 향해 '인권존중'과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과 연관돼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파울씨는 재판에 회부되기 전이어서 최고지도자의 명령만으로도 석방이 가능했지만, 이미 법정에서 각각 15년과 6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나머지 두 사람의 경우는 사안 자체가 다르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나머지 두 사람을 '사면'하려면 미국이 그에 합당한 근거와 명분을 제공하라는 압박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도 북한의 이 같은 유화적 제스처에 적절한 수위에서 화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해 독일 베를린을 방문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전망에 대해 "다음 몇 주, 몇 달간 상황이 발전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미국은 전적으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특히 "대화가 재개돼 비핵화 등에서 진전이 이뤄지기 시작하면 위협 자체가 축소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이 지역에서의 미군주둔 수요를 감축하는 절차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반도 및 주변지역 주둔병력 감축론은 비핵화 목표가 달성되는 최종 협상국면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북한이 억류 미국인 한 명을 조건 없이 석방한 현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그 의미와 무게감이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이번 파울씨 석방 해법이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 등 대화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외교적 행보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드니 사일러 미국 6자회담 특사는 21일 한 세미나에서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유연하다"며 "우리는 대화 자체나 의제에 전제조건을 두지 않으며 북한의 요구사항과 불만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억류자 문제 등 인도주의적 사안과 북핵문제와 북미관계 등 정무·안보사안을 분리해 대응해왔다. 그러나 억류자 사태가 장기화되자 미국 내에서는 두 사안을 일정하게 연계할 수 있다는 쪽으로 유연성을 발휘해왔다.

사일러 특사가 지난달 4일 한 세미나에서 "북한 억류자 문제가 북·미관계의 걸림돌"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중간선거를 목전에 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억류자 문제가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를 활용해 나머지 두명의 석방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에 나설 가능성에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당국자는 22일(현지시간) 논평에서 "억류된 모든 개인의 석방이 제일 우선순위이며 미국이 오랫동안 공식·비공식으로 추구해온 것"이라며 "두 사람의 조기 석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조만간 고위급 특사를 북한에 보내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또 북·미 당국 간의 직접 대화가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북미관계를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실질적인 관계 진전으로 나아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외교소식통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될 수 있지만, 비핵화 사전조치를 둘러싼 입장 차 등이 여전하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적 기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벤트렐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연합뉴스에 "북한과 관련한 우리의 최고 정책목표는 비핵화"라며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으나 북한을 말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판단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동일하고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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