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살아온 나날 그릴 것"…한국 현대사 배경 신작 준비

급격한 경제성장 이면의 비리·모순·억압 조명 '자전거 여행' 10년 만에 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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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은 1948년생이다.

역시 소설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1910년생이다.

아버지는 나라가 망해서 없어진 해에 태어났고, 아들은 그 망한 나라가 다시 정부를 수립한 해에 세상에 나왔다.

1910과 1948.

이 두 숫자에 대해 김훈은 "우리 부자의 운명의 지표 같은 것"라고 했다.

아등바등 발버둥쳐도 거기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인간의 의지로는 안 되는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라는 것이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훈이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신작 장편을 준비 중이다.

그는 21일 연합뉴스에 "사람은 자기의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서 신작 장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피할 수 없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시대에,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느냐,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나느냐는 것은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에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피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김훈 부자(父子)는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지나왔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오롯이 담아낼 계획이다.

자전적인 내용도 "약간 있다"고 했다.

김훈 부자는 닮았다.

부자는 기자로, 소설가로 필명을 날렸다.

아버지 김광주(金光州·1910~1973)는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경기고보, 중국 상하이(上海) 남양의과대학을 다녔다.

1933년 '신동아'를 통해 등단한 그는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서 이봉창, 윤봉길 등과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해방 후 경향신문 문화부장 등을 지냈다.

"우리 아버지는 고생 무지 했어요. 1910년에 태어나서 만주를 떠돌다가 해방된 뒤에 와서 6·25, 이승만, 박정희 (정권) 때까지 살았어요. (저는) 이승만 때 태어나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지금까지 산 거지요.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82달러와 2만달러.

두 숫자는 한국현대사를 표상하는 또다른 숫자다.

"내가 고등학교 때가 1960년대 였거든요. 그 때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82달러였어요. 세계 최빈국이었어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죠. 거기서부터 오늘 이 세월까지…그 변화라는 것이 엄청난 것이죠. 지금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 잖아요. 82달러에서 2만달러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비리와 모순과 억압을 저지른 거잖아요. 그런 게 지금 우리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거잖아요 기본을 이루고 있어요." 그는 "82달러에서 2만달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비리, 모순, 억압, 착취, 확대…구조적으로 모순된 그런 것들을 (이번 장편을 통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소망인데 그렇게 쉽지가 않다"면서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집필을) 미뤄놨다"고 했다.

"마무리를 못하면 하나도 안 쓴 거나 마찬가지죠. 마지막 한장을 못쓰면 하나도 못쓴거죠."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을 1년 반 정도 썼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공을 들이는 그의 장인 정신이 집필을 더디게 했다.

그는 장편을 잠시 내려놓고 단편을 집필 중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꼭 해보고 싶은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가 그것을 실천 못하고 있었는데 역시 힘든 일이었어요." 산문집 '자전거 여행'(문학동네 펴냄)도 10년 만에 새로 펴냈다.

'자전거 여행'은 작가가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누비며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여행산문집이다.

1권은 2000년에, 2권은 2004년에 각각 나왔었다.

개정판은 주제별로 글의 위치를 재구성했을 뿐 내용은 손을 대지 않았다.

작가는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디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과 자연의 안쪽 풍경을 비추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글은 10년이 지났지만 변함없다.

작가는 "십여 년 전에 기록하고 촬영한 현장과 사람들의 표정은 이제 그 모습대로 남아 있지 않다. 거기에는 세월의 힘과 인간의 파괴작용이 겹쳐 있다"면서 "그 현장을 다시 찾아가서 바뀜의 의미를 살피는 글을 쓰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나가서 없어진 것들을 그대로 살려서 보이려는 뜻을 이해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너무 급속히 바뀌어서 바뀌기 전의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차라리 옳겠다 싶었어요. 돌아다니면서 새로 고쳐 써 봐야 그게 또 몇년 지나면 또 무너지니깐 그냥 두는 게 옳겠다 싶어서 손을 안댔지요. 풍경이 자연 스스로 작용에 의해 바뀌는 것은 전혀 없고 인간의 파괴작용에 의해 바뀌고 있어요. 10년전인데…그렇게 10년만에 그렇게 많이 파괴되더라구요. 너무 난폭하게 바뀌니깐 내가 어디와 있는지 모르겠다 싶었어요.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자전거레이서'로 유명한 그는 요즘 걷는다.

경기도 안산 작업실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집필에 몰두 중인 그는 "도로가 나빠서 자전거를 못타고 있다"고 했다.

최근 그는 '사회적 활동'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달 초 그는 김애란 등 문인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지난달에는 중소 출판사와 우수한 출판기획물에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한국콘텐츠공제조합 명예조합원으로 위촉됐다.

팽목항을 찾은 것에 대해 "우리의 미풍양속 같은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일 당한 사람을 찾아가 보는 것이지요. 풍속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이해하면 될 겁니다. 풍속에 속하는 일이고 이념에 속하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콘텐츠공제조합 명예조합원으로 위촉된 것에 대해서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면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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