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면서 몽환적인 무대…서태지의 화려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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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말 빠르죠. 5년도 굉장히 빨리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인생도 빨리 지난 것 같아요. 여러분도 굉장히 시간 빨리 지났죠. 잘 살아가고 있었나요."

22년이 흐르고 '문화대통령'도 어느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시대의 공기를 가득 채웠던 그의 음악이 팬에게 선사하는 기쁨은 여전했다.

5년 만에 '대장' 서태지를 마주한 팬들은 그의 인사 한마디, 노래 한소절, 안무 한 동작에 열광했다.

18일 오후 7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서태지의 컴백 공연 '크리스말로윈'이 열렸다.

컴백을 기다려온 팬들은 예정된 공연 시간 한참 전부터 공연장 앞에서 길게 줄을 이뤘다.

핼러윈 콘셉트 공연답게 특이한 의상을 갖춰 입거나 괴기스럽게 분장한 관객의 모습도 보였다.

아이돌 그룹 공연과 달리 관객들이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보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입장권 소지자에 한해 20일 정식 발매되는 앨범을 1만5천장 사전 판매했다.

그 때문에 남보다 먼저 앨범을 구매하려는 팬들이 공연 전부터 매대에 길게 줄서기도 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공연 관객은 2만5천명에 달했다.

공연장 안팎에는 팬들이 준비한 여러 플래카드가 걸렸다.

'우리에겐 서태지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야', '오빠 우리 많이 컸지요?' 등 문구처럼 그의 오랜 경력을 보여주는 문구가 많았고, '22년동안 우리의 멘탈을 감금해오신 감금의 아이콘 서태지'처럼 유머러스한 문구도 눈에 띄었다.

6시가 지나면서 관객의 입장이 거의 마무리됐고 때맞춰 해가 지면서 공연장이 어둠에 잠겼다.

그럴수록 대형 핼러윈 호박을 콘셉트로 꾸며진 무대의 파란 조명은 짙은 빛을 발했다.

공연이 예고된 오후 7시가 되자 관객들은 '서태지' 이름을 연호했다.

이윽고 잔잔한 피아노 반주의 '모아이' 전주에 맞춰 검정과 흰색 의상을 입은 서태지가 무대 뒤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팬들은 커다란 환호로 그를 맞았고, 첫 곡 '모아이'부터 관객의 '떼창'(합창)이 터져나왔다.

이어 아이유가 무대에 등장한 '소격동'과 새 앨범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의 무대가 펼쳐지면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됐다.

'소격동' 무대에서는 왼편 상단의 구조물에서 아이유가, 오른쪽에서는 서태지가 등장해 거리를 두고 노래를 주고받다가 무대 중앙으로 내려와 함께 마주보며 노래를 불렀다.

둘의 노래에 영상과 조명이 더해져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버뮤다 트라이앵글'까지 부른 그는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보고싶었다. 너무 오랜만이다. 5년 만에 제가 여러분 앞에 섰다. 많이 기다렸다. 한자리에 모인 여러분 보니까 좋다. 너무 좋다"라며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팬에게 첫 인사를 전했다.

이날 1시간30분 동안 열 아홉곡을 부르면서 그는 쉬지 않고 80m에 달하는 대형 무대 끝에서 끝을 방방 뛰어다녔다.

무대 말미에는 목이 완전히 쉴 정도로 샤우팅도 망설이지 않았다.

화려한 디자인의 무대와 조명도 때로는 강렬한, 때로는 몽환적인 사운드와 어우러지며 동화같은 느낌을 도드라지게 했다.

서태지는 다양한 코멘트로 노래 사이마다 능숙하게 관객을 리드했다.

9집의 신곡을 선보이면서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자 "생소한 노래 들어봤습니다. 다들 생소해요?"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고, '시대유감' 무대에 앞서서는 "몸을 풀어보자"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특히 '너에게'를 소개하면서 그는 "오랜만에 엣날로 돌아가보자"며 노래가 리메이크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음반 준비하며 재밌는 일도 많았다. '응답하라 1994' 봤나. 여러분 얘기다. (드라마에 등장한 것이) 양현석 목소리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너에게'가 20여년 만에 리메이크됐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노래가 다시 사랑받았다. 느낌이 새로웠고 여러분 생각도 많이 났다. 그래서 여러분 '꼬꼬마' 시절의 오리지널 버전을 들려드리겠다"며 노래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공연에서는 신곡도 여러곡 선보였다.

선공개한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과 '소격동'을 비롯해 '숲속의 파이터, '잃어버린', '프리즌브레이크', '나인티스 아이콘' 등 여섯 곡을 들려줬다.

그가 '동요'라고 소개한 '숲속의 파이터'에서는 줄에 매달린 대형 썰매가 공중에서 객석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그는 또 '나인티스 아이콘'은 다소 '충격적인' 코멘트로 노래를 소개했다.

그는 "여러분이 좋아하던 90년대 스타들 많죠. 우리의 별이었던 스타들과 바로 여러분의 인생도 같이 저물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물간 별볼일없는 가수가 들려드립니다"라고 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최고 히트곡 '컴백홈', '교실이데아', '하여가'가 연속된 무대 막바지였다.

래퍼 스윙스와 바스코가 무대에 등장해 서태지와 주거니 받거니 무대를 꾸몄다.

서태지도 목을 아끼지 않고 샤우팅을 이어갔고, 지정석 관객도 빠짐없이 일어나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교실이데아' 무대 직전에는 스윙스가 랩으로 "한국에서 서태지만큼 리스크(위험)를 감수한 진정한 예술가는 없었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서태지는 이에 '래퍼' 후배들을 응원하고, 팬을 자랑하는 취지로 "여기에서는 마음껏 욕을 해도 좋아요. 이 친구(관객)들 되게 웃기거든요. 다 좋아해요. 1집 때부터 록, 힙합, 댄스 다 섞었는데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만 다 모인 거예요. 여기 친구들은 벌써 20년 넘게 음악에 편견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서태지 측이 예고한대로 이날 공연의 음향 수준은 예상 이상이었다.

세계적인 음향 엔지니어 폴 바우만이 직접 사운드 디자인을 맡고 130대 메인 스피커를 활용한 공연답게 대형 야외 공연장이었음에도 무대에서 먼 자리에서도 보컬과 악기 소리를 또렷이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소 아쉬움도 있었다.

공연 시간이 예정보다 30분 늦춰지면서 공연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주경기장 크기에 비해서는 관객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어 빈자리가 많아 보였다.

메탈 장르의 노래를 부를 때는 악기 소리에 묻혀 서태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도 했다.

5년 만의 컴백 공연에서 서태지가 앙코르곡으로 택한 노래는 바로 '테이크 파이브'였다.

이 노래는 "내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날 서태지에게 '좋은 사람'은 누구보다 바로 객석에서 환호한, 20여 년간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한 팬들이 아니었을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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