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오진혁 "나는 꼴찌이자 한국양궁의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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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의 간판 오진혁(33·현대제철)은 이 종목의 역사를 새로 써가는 스타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이어 올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개인전을 제패했다.

한국 남자 선수 가운데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는 오진혁이 유일하다.

거기에 오진혁은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도 우승해 다시 나오지 않을 수 있는 금자탑을 세웠다.

한 세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궁으로 불릴 법도 하지만 오진혁의 과거는 그리 찬란하지 않았다.

오진혁은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라한 옛 시절을 유독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시절의 경험이 현재는 오히려 사대에서 힘을 준다고 털어놓았다.

"내일 하루만 더 열심히 쏘아보자. 매일 밤에 자기 전에 참자는 얘기를 수십 번씩 한 시절이 있었어요. 포기란 말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한 습관이 지금의 근성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오진혁은 최근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세트승점 0-4로 끌려가다가 역사에 남을 대역전극을 썼다.

그는 "패배 위기에 몰렸을 때도 다음 한 발만 더 열심히 쏘자는 생각만 했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오진혁이 포기에 굴하지 않는 자세를 배웠다는 시절은 20대 초반이었다.

그는 1999년 충남체고 3학년 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예를 안았으나 곧 굴욕을 맛봤다.

그 해 프랑스 리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오진혁은 개인전 64강에서 탈락했다.

한국 선수 가운데 세계선수권대회 64강 탈락자는 오진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진혁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탈락했고 바로 지독한 슬럼프를 맞이했다.

태극마크와 함께 모든 것을 잃었다는 어린 마음에 세월을 술로 보냈다고 한다.

급기야 2000년 전국종별선수권대회 때는 출전자 가운데 전체 최하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꼴찌의 충격에 마음을 다잡은 오진혁은 하루만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담금질에 들어갔다.

바닥을 기던 국내 대회 순위는 조금씩이었지만 노력만큼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 장으로 작성되는 순위표에서 세 장 마지막에 있던 이름이 두 번째 장까지 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2년이었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어느 정도 정상급 궁사의 반열에 들었다.

태릉선수촌에 한 번만 더 들어가 보겠다는 욕구가 솟구치며 기량도 서서히 늘었다.

그러나 오진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선발전에서 태릉 문턱까지 갔으나 결국 발탁되지 못했다.

그는 "당시 태릉에 있던 박경모, 이창환, 임동현은 감히 근처에 다가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진혁은 태릉을 떠난 지 10년 만인 2009년 결국 태극마크를 회복하고 국제대회에 나서기 시작했다.

양궁은 2010년 개인전 세트제, 올해 단체전 세트제가 도입돼 격변기를 맞았다.

그러나 오진혁은 변화에 진화하는 듯 각종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오진혁은 그런 과정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태릉에서 자신도 모르게 에이스로 거듭나있었다.

전성기를 맞이한 오진혁의 현재 계획은 몸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활을 쏘는 것이었다.

"힘들 때 절박한 심정을 아직 품고 있어요. 활을 쏘는 것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활이 잠깐 잘 안 맞는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진혁의 눈길은 벌써 내년 국가대표 선발전 통과와 세계선수권대회 2관왕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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