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얼만큼일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영제: Paradise in service)은 사회적인 메시지와 공감 가능한 감동으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한 젊은 군인이 군영 내 공창인 '군중낙원'에서 매춘부 관리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영화는 중국과 대만 이산민의 아픔, 여성에 대한 도덕적인 관념, 억압적 군대 문화 등 당시 대만 사회의 자화상을 표현했다.
'군중낙원'은 메가폰을 잡은 도제 니우 감독이 1960~1970년대 대만에서 군생활을 한 아버지 세대의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1969년 대만의 금문도. 아직도 중국 본토와 대치중인 이곳의 해안정찰부대인 해룡부대에 신병 신병 파오(롼징티엔 분)가 전입해온다. 하지만 수영과 잠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는 곧 다른 부대로 옮겨간다. 그가 옮겨간 부대는 '831'또는 '군중낙원'이라 불리는 군영 내 공창이다. 이곳에서 그는 매춘부를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831'에서 복부를 하는 동안 파오는 많은 일을 겪게 된다. 친구였던 화싱은 군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매춘부 사사와 함께 탈영을 하며 중국 본토로 도주하고, 파오를 아껴주었던 특무상사 장윤샨은 사랑했던 매춘부 지아와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파오는 아들을 위해 폭력 남편을 살해한 죄를 감형받기 위해 '831'로 온 니니(완치안)와 가까워진다.
'군중낙원'은 성장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다. 우연처럼 만난 사람과 공간이 아직 채 영글지 못한 한 남자의 내적 성숙을 가능하게 하고, 이로 인해 인생과 역사에 대한 깨달음까지 얻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또 시대적 비극 아래 놓인 젊은이들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이용되고 희생 당하는 과정을 통해 전쟁의 끔찍함을 고발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제작을 맡고 그의 제자인 도제 니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다소 민감한 소재를 선택한 감독은 서정적인 영상으로 시대의 비극을 섬세하게 그렸으며, 배우들의 감성 연기가 어우러져 호소력 높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영화는 파오라는 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회고되는데 시대적 비극이나 소재의 무게감에 비해 이야기의 색채나 밝은 편이다. 몇몇 에피소드를 발랄한 소동극의 느낌이 나고, 몇몇 에피소드는 하이틴 멜로를 보는 것처럼 풋풋한 감성이 넘친다.
이 때문에 공창 속 매춘부의 삶과 상처를 너무 가볍게 다룬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슬픔 속의 희망, 기쁨속의 아픔을 담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을 통해 감독의 남다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우리와 공통된 상처를 가진 대만이기에 영화 속 배경과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또 최근 군내 가혹행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바 있어 억압적 군대 문화를 다룬 에피소드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 속 내용이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고, 이 작품을 통해 아시아 전체가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개막작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부산영화제 측은 보통 10여 편 내외의 후보군을 선정해 개막작 선택을 하는데 올해는 일찌감치 개막작을 선정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높은 신뢰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무거운 소재를 다뤘음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으로 접근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또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롼징티엔, 완치안, 첸이한 등의 스타급 배우들의 매력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이야기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중견배우 첸지안빈의 열연이 영화를 빛낸다.
이같은 요소가 돋보이는 '군중낙원'은 요근래 몇년간 부산국제영화제가 선택한 개막작 중 가장 대중성이 높은 영화로 꼽힐 만 하다.
지난 2일 열린 개막식에서 첫 상영된 '군중낙원'은 영화제 기간 동안 총 세 차례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