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투자확대 기회로'…정부의 역발상

위기론 증폭에 대책 마련나서…한은 기준금리 조정 여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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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엔화 가치 하락과 관련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주까지도 엔화 환율이 원·달러에 연동한 재정환율이어서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엔저에 따른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더는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엔저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싼 엔화를 경기 활성화에 활용하는 쪽으로 대책의 방향을 잡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는 지난달 29일 확대 간부회의에서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지난달 30일 기업인들과 간담회에서 "엔저 대응은 물론 활용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엔저 대책을 내놓기로 함에 따라 원·엔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제3의 위기 오나 정부가 엔저 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증폭되는 위기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엔저 장기화에 따른 피해 우려도 정부를 재촉했다.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지만 가속되고 있는 엔화 약세에 빨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제3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최근 들어 제기됐다.

1985년 플라자합의 직후 엔고가 도래하면서 한국의 수출은 1985년 303억 달러에서 1988년 607억 달러로 급증했고 주가는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하지만 1989년 엔저가 발생하면서 수출 증가율은 28.4%에서 2.8%로 급락했다.

플라자합의는 미국 달러화 강세 완화를 위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장관들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 상승을 유도하기로 한 합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엔저가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겹치는 품목은 55개이고 이들 품목은 우리나라 수출에서 54%를 차지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5% 추가로 떨어지면 수출은 1.14% 줄고 경제성장률은 0.27%포인트 하락한다고 전망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처럼 원·엔 환율이 떨어지면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수출 타격이 가시화돼 무역수지 적자가 상당히 커질 수 있다"면서 "과거의 예로 알겠지만 엔저를 쉽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내년 원·엔 환율, 800원대 추락 가능성 엔저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위기감을 더 키우고 있다.

최근의 엔저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을 일컫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2012년 9월을 전후해 본격화했다.

최근 한때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50원대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 금융사들은 앞으로 1년 내에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영국 '더 뱅커(The Banker)'지 선정 세계 30대(자기자본 기준) 은행 가운데 원·달러와 엔·달러 환율을 9월 중 동시에 전망한 투자은행이나 상업은행 8곳의 내년 3분기 중 원·엔 재정환율 예측치 평균은 100엔당 887원이었다.

BNP 파리바는 1년 안에 100엔당 786원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엔저의 가속 전망 배경에는 일본과 미국의 통화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추가 양적완화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고 이달 중 양적완화를 종료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은 내년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여 달러 강세를 의미하는 '슈퍼달러'가 예고되고 있다.

슈퍼달러로 원화와 엔화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약세로 가느냐에 따라 원·엔 환율의 방향성이나 변동 속도가 달라지겠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원·달러 환율 상승보다 엔화 약세가 더 일찍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엔저 활용에 초점…지원 대책도 강구 정부는 엔저 가속화 가능성이 커지자 일시적 대응보다는 엔저를 활용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일본산 시설재를 수입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설비투자가 확대되면 고용이 늘어나고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된다.

정부는 기업들의 일본산 시설재 수입 유도를 위해 금융이나 세제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설재를 수입하는 기업에 관세 감면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환 위험 관리가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 확대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또 중소·중견기업 등을 대상으로 기업이 엔화 약세를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환변동보험 등 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중소기업청은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내년부터 '수출역량 강화사업'에 참여하는 기업 1천500여개사를 대상으로 무역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이달과 11월에 중소기업의 수출입 담당 직원을 대상으로 한 환위험 관리 설명회를 잇따라 열 계획이다.

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중소기업의 환변동보험 대상 수출계약금은 총 6천83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조4천825억원)의 47%에 불과할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하다.

◇ 한은, 기준금리 내릴까 정부의 대책과 함께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원·엔 환율 하락을 막는 데 효과가 있고 원·달러 환율 상승을 유도해서 엔저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찬성하는 쪽은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있는 상황에서 원화 강세와 저물가, 저성장에 환율 요인까지 있다면 금리인하가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하는 쪽은 금리 정책의 목표가 물가관리인데 환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어서 금리 인하가 원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엔저 대응 효과가 일부 있을 것"이라며 "경기정책이나 엔저 대응 차원에서 추가 완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엔저의 하강 속도가 우려할만하다고 보고 있지만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내외금리차의 축소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원·엔 환율의 지속적 하락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은은 오는 1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한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제품 경쟁력 제고 등 기업들도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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