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조로’, 가볍고 유쾌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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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웅들 사이에서 조로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쯤일까. 파워에선 헐크에 뒤지고, 하이테크놀로지에선 아이언맨에게 한참 아래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배트맨처럼 때깔 좋은 무기도 없다. 어느 잣대를 들이대도 조로는 영웅들 사이에서 ‘귀여운’ 수준이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2014년 대 수술을 마치고 무대에 오른 뮤지컬 ‘조로’의 영웅은 그나마 있던 무게감을 더 뺐다. 유쾌함은 더했다. 황량한 사막에 버려져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나약한 남자 디에고가 그 중심이며, 반면 악의 축을 담당하는 라몬의 권력은 엄청나서 애초에 싸움이 안되는 게임이다. 뮤지컬 초반 칼을 들고 피식 쓰러지는 조로의 모습에 객석에선 몇몇 어린이의 웃음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조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뮤지컬 초반이다. 디에고의 목숨을 구하며 그를 ‘조로’로 내정한 집시퀸 이네즈는 폭발적인 열정과 개그감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사랑과 영혼’의 우만 서먼이 부럽지 않은 내공이다. ‘밀당’과 ‘삼각관계’를 상상하며 부끄러움의 털기춤을 추는 루이사의 코믹 연기 또한 즐겁다. 여기에 조로의 멘토를 자처하는 주정뱅이 신부 가르시아 역시 어수룩한 조로를 숙련시키며 자칫 ‘민폐’가 될 수 있을법한 조로의 캐릭터를 인간적 매력이 돋보이게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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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의 내용은 단순하고,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에피소드 중심이다. 철도사업 투자를 위한 무도회에 참석해 루이사를 두고 라몬과 조로가 칼싸움을 하거나 가르시아가 알레한드로와 ‘노안’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지극히 영화적이다. 8세 이상이면 뮤지컬 ‘조로’는 전혀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자연스럽게 박자를 맞추게 하는 플래맹고는 ‘조로’의 흥을 띄운다. 가난한 민초들이지만 정열을 담은 집시 의상을 입은 민초들이 즐겁게 춤을 추거나, 바람을 가르며 나타나는 조로의 액션에 플래맹고가 더해지면 객석의 온도는 적어도 1도는 상승하는 듯 하다.

제작진이 자랑했던 ‘화려한 액션’은 기대 이하다. 영화의 특수효과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조로의 긴 칼싸움은 그다지 큰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물론 이 복잡한 동선과 합을 맞춘 배우들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숙련도 면에서는 부족함이 엿보인다. 다만 코미디극 ‘조로’에선 분위기를 깰 정도의 결점은 아니다.

‘조로’로 첫 뮤지컬 주인공에 도전한 휘성은 마치 디에고 그 자체로 보인다. 어설프고 가끔 실수도 있다. 하지만 끈기가 있고 열정이 있고, 무엇보다 귀엽다. 그의 설명대로 “조금 짧은 조로”였기 때문은 아니다. 뮤지컬적 발성이나 대사연기 등에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지만, 그런 부족한 부분을 압도할 정도로 휘성의 천진함은 디에고의 그것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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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즈’ 역을 맡은 소냐의 풍성한 고음과 열정적인 플래맹고는, 커튼콜에서 객석의 박수와 환호를 빼앗아 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르시아 역의 서영주, 루이자 역의 안시하 역시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하며, 조로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숨은 조력자의 노력이 비상하다.

‘조로’는 근래 접한 뮤지컬을 통 틀어 가장 러닝시간이 짧게 느껴진 작품이다. 그만큼 유쾌하고 쉬우며, 가족뮤지컬로서 손색이 없다. 진지하고 무거운 ‘조로’를 상상했던 관객에게는 실망을 줄 순 있지만, 인간적 영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조로’는 오는 10월 26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사진=김현철 기자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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