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의 0시 인터뷰] 장애의 벽을 넘은 장한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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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7개월만에 800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나 2번의 수술끝에 두 눈을 잃은 딸을 당당히 국악인으로 키워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올해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국악인 이현아씨와 어머니 김희숙 여사 자리에 모셨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시상식이 있었는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이죠? 어떠셨나요.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자식 키우는 부모님 마음이 다 똑같겠지만 부끄럽고, 현아가 국악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그 자리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기뻣습니다.]

저희가 두분을 어버이날 모시려고 했는데, 현아씨가 미국 공연 중이어서 오늘 모시게 됐는데. 미국 공연 자랑좀 해 주세요.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사실 카네기 홀에 서기 전날 잠이 너무 안오는 거에요. 설레서. 그렇게 카네기 홀에 서서 공연을 했는데 너무 관객분들의 반응이 좋으셔서 기분도 되게 좋았고 무대에 서는 보람도 느꼈어요.]

현아씨가 대통령상 등 상도 많이 받고 그랬는데 어머님께서는 언제 어떤 계기로 현아씨에게 소리, 국악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셨나요.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어렸을때 노래를 참 잘했어요. 성악을 가르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성악을 가르치러 갔는데 우연치 않게 거기 선생님께서 목소리가 참 슬픈 목소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국악, 그중에서도 정가를 해보면 어떻겠느냐 권해주셔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하셨는데, 이 자리에 현아씨가 있기까지, 말로는 다 못하시겠지만 어떠셨나요. 많이 힘드셨던 점을 이야기 해 주신다면.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국악 학교를 다니지 못하니까 개인 레슨을 받으러 다녔었거든요. 일주일에 한번씩 동생 데리고 현아 데리고 그렇게 뛰면서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현아씨는 이러한 어머님의 극진한 뒷바라지 속에 국악인의 길을 걸으면서, 사회적 편견과도 많이 부딧혔을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무대에서 아무래도 가운데 앞에 서다 보니, 않좋은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셨고, 대학 진학 할때도 장애의 벽이 참 놓다는 것을 많이 느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엄마 아니었으면 저는 이렇게 이 자리까지 오기 힘들었을것 같아요. 이렇게 뒷바라지 해 주시고, 제가 표현은 못하지만 항상 감사하고.]

오늘 자리를 드릴테니 표현을 좀 하시지요.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엄마, 이렇게 이 자리까지 끌어주고 이렇게 항상 뒷바라지 해주셔서 고맙고, 사랑해요.]

어머님께선 따님이 국악 정가 부문에서 정상에 서 있지만 우리 현아씨가 이렇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 있으실 것 같은데.

[김희숙·이현아 국악인 : 앞으로 국악인으로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아가 됐으면 하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날까지 현아가 열심히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께서 오늘 30년 만에 처음 분장하셨다는데, 어머님께서도 어머님을 위해 좀 사시고, 건강하시고. 이렇게 힘든 자리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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