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친구들과 마음껏 울면서 함께 슬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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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으로부터의 분리

생존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고대 안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의료진은 그들 대부분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을 겪고 있고 한 달 이상의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지인들의 면회를 금지 시켰다. 병원의 이러한 방침은 맞다. 원칙적이다. 큰 재난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해야 하고, 그들의 회복을 돕는데 가장 능숙한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할 만한 일들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숱하게 있다. 병원만큼 철저하지는 못하지만 단원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본업을 뒤로하고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자발적으로 교사와 학생들의 심리 상담을 조용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간 상황실로 쓰였던 공간을 다른 곳으로 옮겼고, 전교생이 모일 때마다 사용했던 강당도 폐쇄했다. 이번 사고를 연상 시킬 수 있는 것들을 최소한이라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다. 사고와 관련된 것으로부터 노출을 줄이는 게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조치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친구들과 마음껏 울면서 함께 슬퍼하고 싶습니다.’

고대 안산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건 부적절 하기에 그 대신 아는 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지금 퇴원하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게 해주세요. 친구들과 마음껏 울면서 함께 슬퍼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살아와주어서 눈물 나도록 감사하지만, 그들은 살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병원 의료진의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위험한 수준의 충격을 겪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그들이 운명을 달리한 친구들의 장례식을 직접 보게 된다면, 그들의 죄책감은 더 커질 것이고,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울면서 슬퍼할 기회를 주는 건 정녕 안 되는 일일까?

슬픔과 스스로의 치유 능력(Self-effic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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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들이닥쳐 28만 명이 희생됐다. 수업 중이던 학교도 무너져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가 너무나 컸을 뿐 아니라 사회 안전 체계가 거의 없는 저소득 국가의 재난이기에 생존자의 심리적인 문제까지 돌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곳에 미국의 심리과학 연구팀이 방문했다. 사회의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요인들이 학생들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세계보건기구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무너진 학교를 다시 세우는데 참여하고, 희생자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학생이 정신적 충격을 더 빨리 극복했다.’ 미국도 뉴욕의 9.11 테러와 뉴올리언즈의 카트리나 허리케인을 경험하면서 재난 후 집단 외상(Mass trauma)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애도 의식(mourning rituals)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희생된 사람을 함께 추도하는 의식은 이 능력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 마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애도 의식에 참여를 권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의료진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들이 잠시나마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의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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