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균과의 대화는 청량감으로 기억된다. “음, 저는요.”라며 예쁘고 무난한 말을 고르기에 바쁜, 여느 연예인들과는 달랐다. 삼천포 어귀를 휘젓는 기자의 질문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예의바르지만 한방울도 남김없이 대구사투리로 내뱉던 게 바로 김성균의 언어였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마친 뒤 김성균을 만났다. 그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와 ‘이웃사람’에 이어 드라마까지 소위 ‘대박’을 터뜨린 인기 스타가 됐다. 불과 1년 전 그의 트위터에는 “오늘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글이 올라 있었는데 그동안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1년 만에 많은 것이 변했다.”는 말에 김성균은 “그쵸. 저도 놀라요. 촬영할 땐 몰랐는데 요즘은 돌아다니니까 많이 알아보시더라고요.”라고 느릿한 경상도 말로 답한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들뜸은 없었다. “그래도 뭐 달라진 건 없어요. 애들 아빠고 가족의 가장이고 그렇죠.”
준비한 질문은 두 가지 버전이었다. 하나는 ‘응답하라 1994’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질문이 주를 이룬 스물 여섯가지 질문이다. 김성균에게 무엇을 택하겠냐고 물었더니 “원하는 걸로 해달라.”고 쿨하게 답한다. 그의 대답에 인간 김성균이 더욱 궁금해져 두번째 질문지를 꺼내든다.
첫 질문은 가볍게 ‘주량이 어떻게 되나’다. 주량이 왜 궁금하냐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김성균은 시원하게 답한다. “소주 2병이요. 물론 더 마실 순 있는데 그거면 딱 좋아요. 술이요? 엄청 좋아하죠. 어젠 하루 쉬었고 일주일에 한 5일 마십니다. 꼭 거창한 취미가 있어야 하나요. 좋은 사람들과 한잔 기울이는 게 제 취미이고 낙입니다.(웃음)”
그에게 트위터에서 배우 곽도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봤다고 말했다. 김성균은 “제 술친구 중 한명”이라며 껄껄 웃는다. 두 사람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흥미롭게도 곽도원과 김성균은 이 영화로 무명생활을 ‘접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곽)도원이 형이랑은 나이 차이는 좀 나는데 비슷한 게 참 많아요. 일단 연극쟁이로 오래 살았다는 점이 비슷하죠. ‘범죄와의 전쟁’에 촬영할 때 형과 저는 영화판이 생소했어요. 우리만 촬영장에서 신기한 눈빛으로 배우들 연기하는 거 보고 그랬어요. 근데 이 영화로 둘 다 잘 됐잖아요. 지금도 형이랑 같이 술 마실 때 ‘우리 정말 신기하다, 그치?’란 말 자주 해요.(웃음) 서로 공감하는 게 많아서 의지가 돼요.”
그렇기에 김성균에게 터닝포인트가 작품은 ‘범죄와의 전쟁’이다. 물론 ‘응답하라 1994’로 김성균은 더욱 대중적인 스타가 됐지만 그가 영화와 드라마의 섭외 1순위가 된 건 ‘범죄와의 전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응사’도 정말 고맙고 소중한 작품이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모든 게 우연처럼 진행된 신기한 작품이었어요. 캐스팅도 주목을 받은 것도요. 지금 생각해도 꿈꾼 것 같아요.”
잠시 소회에 젖은 김성균에게 “혹시 최근에 일이 아닌 진짜로 울어본 적이 있나.”라고 묻는다. 아무래도 없겠다 싶어 “없죠?”라고 물으니 예상외로 김성균은 “음, 어제도 울었는데?”라고 답한다.
“어제 새벽에 라면 먹으면서 TV 보다가 울었어요. 안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 잘 우는 편이에요. 어제 어떤 프로그램을 봤냐고요? ‘렛 미인’이라고 성형수술을 시켜주는 내용이었는데 성형수술을 받으시는 여성분이 아들과 떨어지면서 우시는 거 보고 덩달아 울었어요. 아, 너무 슬프더라고요.”
김성균의 끝이 느릿느릿한 말투가 인상 깊어서 “혹시 고향이 전라도 쪽이세요?”라고 물었다가 “사투리 보면 모릅니까.”라는 농 섞인 핀잔을 날아온다. ‘응답하라 1994’의 삼천포 캐릭터 처럼 김성균은 1년 동안 삼천포 지역에서 극단생활을 했고 이후 경남 지역에서 연극을 한 뒤 대학로로 올라왔다.
김성균의 실제 고향은 대구다.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티없던 시절 행복했던 기억은 거의 대구에서다. “어릴 때 가족 간에 문제가 조금 있어서 이사를 참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그 동네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더 열심히 놀았던 거 같아요. 대구에 있는 연못에서 가재 잡던 기억도 나고 친구들이랑 뛰어놀던 장면도 생각나고 그러네요.”
많은 연예인들의 트위터에는 세련된 화장을 하고 멋진 장소에 있는 셀프 사진이 걸려 있지만 김성균의 그곳에는 내복을 입은 두 아이들의 해맑은 사진이 걸려 있다. 꾸밈없고 소탈한 모습은 그냥 김성균이다.
아버지란 이름을 단 김성균은 더욱 단단해 보인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나의 어린시절이 눈 앞에서 뛰어노는 것 같아서 신기해요. 그 아이들이 행복해지면 저도 똑같이 행복해 져요. 정말 신비한 일이죠? 그러니까 얼른 한명 낳아보세요. 그럼 아실 거예요.(웃음)”
질문을 쉼 없이 퍼붓다가 “반대로 김성균 씨가 팬들에게 궁금한 게 있나.”라고 묻는다.
김성균은 “제가 어떤 배역을 맡으면 식상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을까요.”라고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을 내놓는다. 진솔함과 겸손함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소속사 관계자들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지만 김성균은 진지하다. 배우나 연예인이기에 앞서 연기를 업으로 삼은 그에게는 사람 냄새 나는 한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김성균에게 연기를 제외하면 쉽사리 생각나는 부분이 없다.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그의 대답이 처음으로 머뭇거린다. 어렵게 입을 뗀 그는 “글쎄요.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몸쓰는 일 했겠죠.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니까... 사실은 정말 아무것도 안 떠올라요.”
그는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칭한다. “저는 촌놈이에요. 사실 최근에 조금 유명해 졌다고 하지만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달라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그냥 평생 연기밖에 모르는 촌놈으로 살고 싶어요.”
<에필로그>
50분간 열정적으로 스물여섯개의 질문에 답해준 김성균 씨에게 정말 미안하게도 개인적 실수로 그와의 소중한 대화 기록을 분실했습니다. 일주일에 걸쳐 세포 하나, 하나에 집중해 김성균 씨의 눈빛, 말투, 현장 분위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인터뷰를 작성했습니다. 그럴수록 김성균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단언컨대 그는 가장 사람냄새 나는 배우였습니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