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사법기관의 소홀한 일 처리로 뒤바뀐 인생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어느날 갑자기 동명이인의 전과를 뒤집어 씁니다. 사법 당국은 아무리 항의해도 바로 잡아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이사도 못가고 직장도 못얻습니다. 반대로 실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은 죄에 대한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승승장구합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떤 기분일까요?

마트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섞어 놓은 듯한 이런 부조리극이 중국 안후이성 허비시에서 실제 일어났습니다.

지난 2003년 당시 20살의 샤녠(가명)씨는 막 중국의 가오카오, 우리로 치면 대입수학능력시험을 본 상태였습니다. 대학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관할 파출소에서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파출소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고를 받았습니다. 강도죄에 대한 재판 결과서가 나왔다는 것이었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사법기관의 소홀한

습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앞으로 어디 이동할 때는 반드시 파출소에 신고해야 한다며 담당 경찰은 윽박질렀습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강도죄에, 받은 적도 없는 재판 결과라니. 샤씨는 어머니와 함께 담당 법원으로, 관할 경찰서로 뛰어다녔습니다. 담당자들은 샤씨를 한 번 보기만 해도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샤씨는 장애인이였습니다. 어렸을 때 큰 병을 앓은 탓에 키가 1백50 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1백70 센티미터가 넘는 범인의 신장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예 강도짓을 할만한 신체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관할 법원과 경찰은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무고하게 전과자로 만들어 미안하다는 사과 공문까지 발부했습니다. 샤씨 가족은 그렇게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4년 뒤 관할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샤씨는 강력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이기 때문에 요주의 관리 대상이다. 요즘 별 문제 없이 생활하느냐? 항상 동향을 파출소에 신고해라." 샤씨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었습니다. 다 고쳐졌으리라 생각했던 오류가 재현됐습니다.

또다시 관할 법원과 경찰서를 찾아 다녔습니다. 사건 기록과 재판 처리 상황을 뒤졌습니다. 알고 보니 같은 지역 출신에, 나이가 같은 또다른 샤녠씨의 전과를 뒤집어 쓴 것이었습니다. 4년전 해당 법원은 재판 결과를 기재하기 위해 샤녠씨의 호구기록지를 샤씨의 거주지 파출소에 요구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찾아본 결과 샤녠이라는 이름의 호구 기록지는 단 한 장 뿐이었습니다. 무고하게 피해를 본 주인공 샤씨의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실제 강도죄를 범한 샤씨는 그 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호구 기록지를 대학 부근 주소지로 옮겼습니다. 담당 경찰은 성과 이름이 같고, 나이도 같으니 그냥 범죄자 샤씨의 것이려니 했나봅니다. 출생 일시와 가족 관계, 신분증 번호 등이 다르다는 점은 그냥 무시하고 말이죠. 그렇게 무고한 샤씨의 호구기록지가 법원에 넘어왔고, 법원 역시 제대로 살펴보는 과정 없이 전과기록을 올렸습니다.

4년전 샤씨 가족이 잘못된 전과 기록을 수정해달라며 낸 청원은 결재를 위해 왔다갔다 하는 과정에서 흐지부지 됐습니다. 마침 그 때 호구 기록의 수정을 담당하는 책임 체계가 바뀌면서 서류가 중간에 '붕 떠버렸'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억울한 전과2

이번에도 법원과 경찰측은 샤씨 가족에게 백배 사죄하며 해당 기록을 수정했다는 확인서를 줬습니다. 물론 사과문도 다시 줬습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말 파출소에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6년전과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강력범 전과자로서 생활과 행적을 파출소에서 감시 받으라'고 했습니다. 샤씨의 어머니는 이번에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어금니를 깨물었습니다. 또 법원과 경찰서를 뛰어다니며 고생한 끝에 밝혀진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6년 전에 호구 기록의 문서상 수정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 직전에 호구상의 전과 기록을 컴퓨터 테이터베이스화 하면서 무고한 샤씨가 전과범으로 등록됐습니다. 심지어 샤씨의 생년월일과 신분증 번호까지 모두 전과기록에 등재됐습니다. 그러니 경찰에서는 여전히 샤씨가 전과자였습니다.

샤씨측은 실제 범행을 한 샤씨의 소재도 쫓았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친구 2명과 강도짓을 저지르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실제 전과자 샤씨는 변호사가 돼있었습니다. 전과 기록이 없다보니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뿐더러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했습니다. 만약 전과기록이 제대로 기재돼 있었더라면 중국의 변호사법상 응시 자격조차 없었을 터였습니다. 물론 본인이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죄과를 동명이인에게 넘겨주고 홀가분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 무고한 샤씨는 남이 저지른 죄과의 업보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장애로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던 샤씨는 반복되는 경찰의 감시에 거의 대인 공포증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여러차례 직장을 잡았지만 막상 출근을 할 때쯤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채용이 취소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직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도 빼앗겨 허비시 밖으로는 나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억울한 전과3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취재한 현지 매체 기자가 경찰 담당자를 상대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죠?"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요인이 꼬여 들어갔죠.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의 담당자들이 소홀하게 일 처리를 해 실수했던 것도 있고요, 시기적으로 제도가 바뀌던 시기라 어쩔 수 없었던 점도 있고요."

물론 담당 경찰, 또는 법원 직원이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해 생긴 실수입니다. 시스템이 바뀌면서 생긴 혼란도 공교롭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일처리 미숙이라고 부르기에는 한 인생에 끼친 결과가 너무나 크고 치명적입니다.

관청, 특히 사법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는 본의 아니게 특정인의 생사 여탈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에게는 하루에 처리하는 수많은 일의 하나일 뿐이지만 해당자에게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당연히 일 하나하나에 틀림이 없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울일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샤씨를 상대로 처음 저지른 실수도 문제였지만, 그 뒤 두번이나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10년이나 흘려보낸 것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 보입니다. 중국 언론들이 이 사건을 거론하며 '관공서 근무자들의 무책임'에 혀를 차는 이유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프라인 광고 영역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오프라인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