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항일투사 104명이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서 전사했다는 문건이 발굴됐다.
정재상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폭도에 관한 편책'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박물관이 소장한 '진중일지', 당시 일본군 보병 조선 주차군사령부가 엮은 '조선 폭도 토벌지'에서 이 문건을 찾았다고 11일 밝혔다.
이 문건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 경찰과 일본군 보병이 작성한 자료로서 항일투사들의 항쟁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정 위원장은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면 단위 지역에서는 가장 많이 희생된 기록이라고 덧붙였다.
문건을 종합하면 경남 의병의 총대장격인 경남 창의대 박동의(산청), 의병장 류명국(하동)이 지휘하는 의병이 1908년 5월부터 10월 사이에 일본군의 '지리산 대 토벌작전'으로 희생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문건들에는 윤영수(진주) 등 의병 80여 명이 1908년 6월 5일 새벽 1시30분 하동 동북 약 50리 부근 옥종면 월횡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51명이 전사하고 15명이 부상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앞서 5월 22일에는 의병 10여 명이 하동 동북방 옥종면 월횡 삼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4명이 전사했다고 돼 있다.
7월 10일에는 하동 동북 옥종면 청수동에서 의병 약 40명이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13명이 전사했고, 7월 17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의병 40여 명이 1시간 30분간 교전 끝에 9명이 전사했다고 기록했다.
7월 18일과 28일에도 옥종면 회신과 월횡에서 각각 9명과 7명이 전사하는 등 그해 10월까지 104명이 옥종면에서 전사한 기록을 확인했다.
정재상 위원장은 "104인의 의병이 전사한 기록은 전국적으로 볼 때 면 단위 지역에서는 가장 많이 희생된 기록이다"며 "옥종면은 산청과 진주의 접경지역인데다 지리산 기슭을 끼고 있어 항일투사들이 유격전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판단돼 의병이 모여들고 그곳에서 많은 전투가 벌어져 희생자가 많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그러나 이 문건에는 전사한 의병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이들의 뜻을 기리는 순국비 건립 등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하동=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