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우리가 앵벌이입니까?" 어느 수입차 업체의 횡포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제보자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속된 말로, 우리가 무슨 앵벌이입니까? 빵 하나를 사도 문제가 있으면 사과하고 바꿔주는데, 5천만 원 주고 산 차가 그 지경인데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5천만 원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입니까?”

이 제보자는 지난 4월, 국내 판매상을 통해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링컨’의 신형 세단을 구매했습니다. 새 차를 샀다는 기쁨도 잠시, 제보자는 세차장을 찾았다가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됩니다. “혹시, 중고차를 사셨나요?” 구매한 지 석 달도 안 되는 새 차를 중고차라니, 제보자는 세차장 주인에게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세차장 주인은 조수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보세요. 차 문을 열고 이쪽 차체 프레임을 보면 광택이 안 납니다. 이건 다시 도색했다는 겁니다. 대게 사고 난 차가 이렇게 도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세차장 주인이 잘못 본 것일까요? 정확한 검증을 위해 자동차학과 교수, 자동차 도장전문가 등과 함께 제보자의 차를 직접 점검해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차장 주인의 판단이 맞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한눈에도 보기에도, 문제 부위의 광택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도장 두께였습니다. 정상부위의 두께가 120마이크로그램 이상 나왔지만, 도색 부위는 110~90마이크로그램으로 약 30%가량 얇았습니다. 그마저도 두께가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럴 경우,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차체 내부에서 부식이 발생해 차가 쉽게 망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한세현 취재파일

피해를 본 소비자는 이 제보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포드-링컨 자동차 동호회’를 중심으로, 비슷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제보가 계속 올라왔습니다. 차 앞쪽 범퍼가 통째로 다시 도색된 경우부터, 구매한 지 반년도 안 돼 트렁크 쪽의 페인트가 벗겨지지는 경우까지 피해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대전, 경기도 안산, 강원도 양양 등을 돌아다니며 제가 직접 확인한 피해자만도 10명이 됐습니다.

“문제가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우리도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광고 영역

포드-링컨은 차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왜 소비자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포드-링컨 측 해명은 의의로 간단했습니다. “우리도 차에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문제가 있어서 도색한 건 맞지만, 어디서, 어떻게, 왜 다시 도색됐는지 차를 판매자 자신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차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판매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포드-링컨의 고객서비스 담당자와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 통화 내용 *

기자 : 000씨, 아시죠? 그분 차량 다시 도색하신 거 맞으시죠?

[포드-링컨 : 아니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기자 : 안 하셨다고요? 000 씨가 팀장님이랑 통화한 전화 녹음을 들어봤는데요, 그땐 도색한 게 인정하셨던데요?

[포드-링컨 : 저희는 도장한 적이 없다니까요.]

기자 : 제가 전문가 불러서 점검해보니, 도색한 게 확실하다고 하던데요?

[포드-링컨 :(3초가량 침묵) 미국에서 처음 생산할 때 도장이 잘못된 거 같고, 그래서 우리가 도장을 다시 해주겠다고 얘기한 겁니다.]

기자 : 그럼 도장도 제대로 안 된 제품을 파신 건데, 이런 사실 미리 말씀해 주셨나요?

[포드-링컨 :아니요. 저희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라서 고지를 못 한 거죠. 알았으면 그렇게 판매했겠습니까?]

기자 : 그럼, 제품에 문제가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판매하셨던 말씀이세요? 제품을 제대로 검사도 하지 않고 소비자한테 넘겨주셨다는 말씀이세요?

[포드-링컨 : 그럴 수 있는 부분도 있지요, 분명히.]

기자 : 그럼 만약에, 회사 측에서 판매하기 전에 차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면, 소비자한테 그런 문제가 있다고 사전에 알려 주시나요?

[포드-링컨 : 그 부분에 대해선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 문제를 맡은 담당자한테 연락하라고 하겠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 하지만,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사를 직접 방문해서 취재한 뒤에야, 홍보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홍보담당자는 휴가 중이라 보고를 늦게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위 대화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차를 다시 도색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도색작업이 미국에서 생산과정에서 이뤄졌는지, 국내에 배송된 뒤에 진행됐는지 우리도 알 수가 없다. 또, 설사 차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사실을 소비자에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한세현 취재파일

“다시 도색해주는 거 이외 다른 보상은 없습니다.”

수입차는 외국에서 차를 만들어 배를 통해 국내로 들여오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렇다 보니, 운송과정에서 차가 부딪치거나 흠집이 나는 경우가 자연스레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흠집이나 불량은 소비자가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입차 업체가 차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미리 소비자에게 알려주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피해를 본 소비자가 보상을 요구했을 때, 포드-링컨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 역시 간결했습니다. “다시 도색해주는 것 이외의 다른 건 없다.” 도색을 다시 해주는 건 과연, 충분하고 적절한 보상이 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선, 이렇게 다시 도색하면 차 가격이 많이 떨어집니다. 판매자는 단순히 도색만 문제가 됐다고 얘기하겠지만, 중고차를 구매하는 입장에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도색만 다시 칠한 건지, 아니면 큰 사고가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차를 인수받는 순간,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다시 도색한다고 해도, 제품의 질이 원래 정상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수입차 도색업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초 공장에서 처음 도색할 땐 고압으로 눌러가며 도색해서 페인트가 두텁고 단단하게 붙어 있지만, 나중에 다시 도색할 때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표면만 도색한다. 당연히 부식되거나 이물질이 붙는 등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차를 수리 맡기며 발생하는 금전적, 시간적, 정신적 손해까지 고려하면 자동차 회사의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였습니다.

포드-링컨, 인터넷 동호회 글까지 삭제

이처럼 적절한 보상을 받기 어렵게 되자, 일부 소비자들이 인터넷 자동차 동회를 중심으로 피해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며칠도 되지 않아 댓글이 수십 개가 달리고, 조회 수는 2천 건이 넘어섰습니다. 자신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며 하소연하는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저도 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다른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한세현 취재파일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느 날 그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전 깜짝 놀랐습니다. 해당 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글을 쓴 소비자에게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당황스러웠습니다. 포드-링컨 측에서 포털사이트에 요청해, 해당 글을 강제로 삭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은 또다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우리끼리 편하게 하는 얘기까지 마음대로 지우는 게 말이 됩니까? 듣기 싫은 얘기 한다고, 사람 팔을 이렇게 비틀어도 되는 겁니까? 차를 팔 때만 세계적 기업이고, 팔고 나면 조직폭력배가 되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설명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전 편집장이자, 도쿄 특파원을 지낸 ‘빌 에머트’는 일본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가장 중요한 판별 기준은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 책임’을 이행했느냐 여부에 달렸다.” 정부는 주요 정책이 국가의 현재와 장래를 위해 올바른 것인지, 권력의 원천인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건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의 제품을 구매해주는 소비자에게 제품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겠다고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그런 설명이 없거나 그 설명의 수준이 납득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 기업은 ‘설명 책임’을 방기한 것입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선 포드-링컨 사는 이런 ‘설명 책임’을 다했다고 보시는지요? 제보자가 제게 포드-링컨 본사에 가서 꼭 전해달라고 했던 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장한테 따져 묻고 싶었어요. 당신 회사 직원들, 누구한테 월급을 받습니까? 당신들 월급, 누가 줍니까? 우리처럼 당신 자동차 사주는 소비자가 주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습니까?”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 8시 뉴스 리포트 :

‘새로 산 수입차에 '덧칠' 흔적…피해자 분통’

※ 취재과정에서 이호근 대덕대학 자동차학과 교수,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학과 교수, 김경배 교통환경문제연구포럼 정책실장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