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사주는 장난감, 이 정도는 그냥 집에서 만들어 쓸 수는 없을까?’
자녀를 키우는 분들 중엔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간단한 플라스틱 조각이나 프린트된 두꺼운 종이를 이어붙이고 끼우면 공룡도 되고 집도 되는 그런 장난감들, 아니면 인형 옷이나 숫자놀이 퍼즐, 장난감 자동차, 캐릭터 그림 도장 등등. 대부분 간단하지만 늘 돈 주고 사야했던 그런 것들입니다.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없어 번번이 사러 나가야 했던 물건들도 많이 있겠지요. 비누 케이스라던가 자동차 안전벨트 클립, 똑딱이 단추, 화장실 슬리퍼나 플라스틱 바구니... 사실 종류를 열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1인 제조업의 시작? - 가정용 3D 프린터 시대 열렸다
지난 16일, 미국 Microsoft가 집에서 3D 프린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앱 ‘Microsoft 3D Builder’를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Windows 8.1 버전을 사용하고 있고, 3D 프린터를 갖춘 사용자들은 미국 MS 사이트에서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Windows 8.1은 3D 프린터용 확장자 파일을 지원하고, 드라이버를 포함하고 있어 3D 프린터를 연결하면 자동으로 ‘플러그 앤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Microsoft 3D Builder는 가정용 앱입니다. 산업현장이 아닌, 집에서 일반 사용자들이 손쉽게 간단한 물건들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앱 내에 포함된 몇 가지 3D 이미지 샘플을 필요에 맞게 모델링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출력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조작으로 출력하려는 물건의 재질이나 밀도, 크기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3D 모델 이미지 데이터를 내려 받아 출력할 수도 있습니다.
3D Builder를 이용해 출력할 수 있는 물건들은 다양합니다. 머니 클립, 그릇과 식기류, 플라스틱 바구니, 기차놀이 세트, 집짓기용 블록, 퍼즐 조각, 미니어처 피규어... 재료나 가공 상의 일부 문제점만 제외하면 사실상 플라스틱으로 제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물품을 집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들어 쓸 수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세일이 이뤄지는 ‘블랙 프라이데이’입니다. 최대의 쇼핑 ‘대목’을 맞아 올해는 MakerBot, FlashForge, 3D Systems 등의 3D 프린터 제조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신제품 판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22일에는 국내의 한 3D 프린터 업체가 대형마트에 처음으로 입점하면서 오늘(25일) 3D 프린팅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승하는 등, 나라 안팎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 시판 중인 ‘가정용’ 3D 프린터의 가격은 약 50만원에서 2백~3백만원 선에 이릅니다. 아직 3D 프린터의 가격과 재료 구입비, 유지비를 감안하면 아직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공산품과 대등하게 경쟁할 만한 가격 대 성능 비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3차원 조각 방식의 프린터가 갖는 단색 인쇄 문제나 쾌속조형 방식의 정밀도 등이 문제로 남아있지만, 계속해서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업계에선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영세 제조업 몰락의 서곡인가, 새 시대의 시작인가
가까운 미래에 집집마다 3D 프린터를 갖추고, 서로 프린팅 이미지를 공유해가며 필요한 물건을 출력해 쓰는 시대가 오면 산업구조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3D 프린팅 이미지 데이터가 지적 재산권으로서 폭넓게 거래되는 반면, 기존의 영세한 중소규모 제조업체들은 타격이 예상됩니다. 더 이상 인터넷에서 상품을 주문하지 않아도 집에서 장난감과 비누 케이스, 자동차 용품과 가구를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미 미국에서는 3D 프린팅 이미지가 웹상에서 상업적으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최근 3D 프린터의 파급력은 산업 전 분야로 눈부시게 퍼지고 있습니다. 논란을 일으킨 권총 제작에서부터 치과 보철, 가구 제작, 주택 건축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3D 프린터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소형 무인기를 3D 프린터로 제작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플라스틱 등에 국한됐던 소재가 세라믹, 각종 합금 등으로 다양화된 데다, 줄곧 레이저를 이용해 온 가공 방식도 전자 빔을 채택하면서 바로 상용 제품에 투입할 수 있을 수준까지 정밀도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입니다.
의료 제약분야도 변화의 물결이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인공관절이나 보형물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고, 성분이 대체로 비슷한 복제약(제네릭)들은 집에서 의사의 처방전을 인증 받아 직접 제조해서 복용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도입이 추진 중인 원격의료와 결합해 낙도와 같은 의료 오지에서 활용할 기회도 많습니다.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3D 프린팅을 이용하면 우주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상에서 우주까지 킬로그램(kg)당 수천만 원의 운반비용이 들어가는 직접 수송을 최소화하고도 달 기지를 건설할 수 있는 겁니다. 달 표면의 광물을 채굴해 3D 프린터로 가공하면 웬만한 작업도구는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조달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을 비롯한 우주 선진국들은 벌써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3D 프린터의 보급으로 이제 물건이 직접 오가지 않고 그 '사상'만 오가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시뮬라시옹’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살아있어 3D 프린터를 본다면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새로운 현상을 놓고 어떤 열변을 토했을지 궁금합니다.
* Microsoft 3D Builder 앱 주소
http://apps.microsoft.com/windows/en-us/app/3d-builder/75f3f766-13b3-45e9-a62f-29590d5781f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