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습득 지갑 돌려주려다 '당황하셨어요'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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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사회적 신뢰'의 경제적 가치를 설파합니다.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말입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불안과 공포라는 심리적 비용도 막대합니다. 신뢰는 단순히 무형의 가치가 아닙니다.

뻔한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이유는 중국의 한 농민 부부가 겪은 사건을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신뢰가 없을 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실제 상당한 손해를 입을 뻔 했습니다. 신뢰는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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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돌려주기2

지난 17일 헤이룽장성 바얀현의 한 농촌에 사는 한 50대 여성이 아들과 함께 하얼빈시에 나갔습니다. 아들이 거주할 전셋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계약금을 인출하려고 근처 은행에 들어가는 순간 길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짙은 갈색 지갑이었습니다. 주워서 안을 들여다보니 7천5백 위안의 현금이 들어있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1백32만원쯤 되는 꽤 큰 돈입니다. 신용카드 한 장도 있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계약금을 해결하라는 하늘의 선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인은 달랐습니다. 어떻게든 돌려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더 뒤져보니 지갑 주인의 신분증과 연락처까지 나왔습니다. 지체 없이 지갑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뭐 잃어버리시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네, 맞아죠.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혹시 제 지갑을 주우셨나요?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방 찾으러 갈께요." 등등. 그런데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잃어버린 것 없는데요."

지갑을 주운 부인은 당황했습니다. "저, 지갑을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요. 돈이 많이 들어있는데요." 상대방은 날카롭게 대꾸했습니다. "돈을 주웠으면 가져가서 쓰면 되잖아요. 나한테 왜 전화해요. 다신 이런 전화하지 말아요. 이 사기꾼아.(철컥)" 부인은 황당했습니다. 선의로 지갑을 돌려주려다 한 순간에 보이스 피싱 사기꾼으로 몰린 것입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나섰습니다. "잘 설명했어야지." 남편이 지갑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돈 7천5백 위안이 들어있는 지갑을 주웠습니다. 돌려드리려고요." 지갑 주인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이제 떼로 사기를 치려고 하네. 나를 바보로 알아? 한 번 더 전화하면 경찰에 신고할꺼야.(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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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돌려주기3

이쯤 되면 미련 없이 지갑 안의 돈을 써버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농민 부부는 근처 파출소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경찰에게 말하고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맡겼습니다. 경찰이 다시 지갑 주인에게 전화 했습니다. "파출소인데요, 잃어버린 지갑을 접수 받았습니다. 와서 찾아가세요." 지갑 주인은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보이스 피싱 사기단이로군. 이제 경찰까지 사칭해." 담당 경찰관은 자신의 파출소 전용 전화번호와 자신의 경찰 번호까지 알려주면서 상황을 설명했지만 지갑 주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이 사기꾼들아. 가만 안둘거야." 그리고 실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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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를 받은 경찰이 전화번호와 경찰 번호를 확인하니 모두 정확한 사실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지갑 주인은 가방을 뒤져봤습니다. 당연히 지갑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문제의 은행 앞에서 택시를 내리는 순간 휴대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느라 지갑을 제대로 가방에 넣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갑 주인은 한달음에 파출소로 달려갔습니다. 전화를 걸었던 파출소 경찰에게 백배사죄했습니다. 지갑을 주워 파출소에 맡긴 농민 부부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례금으로 2천 위안(약 35만원)을 제안했습니다. 농민 부부는 거절했습니다. "애초에 우리 돈이 아닌데요. 만약 우리가 가졌다면 평생 마음에 걸렸을 겁니다. 잠도 잘 못잤을 거예요. 경찰이 도와줘 주인에게 되돌아갔다니 다행입니다. 마음에 얹혔던 돌을 치워버린 느낌입니다."

지갑 주인은 왜그렇게 지갑을 돌려주려던 농민과 경찰의 말을 믿지 못했을까? "전에도 돈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만, 잃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돈을 되돌려주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전화를 아예 믿지 못했어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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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돌려주기4

저도 심심치 않게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습니다. '계좌가 해킹 당했으니 돈을 안전계좌로 옮겨라.', '서울지검 000호실인데 조사 받을 것이 있다.', '애가 사고가 났으니 빨리 병원비를 보내라.' 등등. 보통은 대꾸도 하지 않고 끊습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진짜 큰 일이 났고 이를 누군가가 알려주려고 전화했는데 무시해 버린다면…. 저도 이 지갑 주인과 같이 황당한 태도를 취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정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그래서 이미 많은 것을 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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