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전쟁 당시 공주 왕촌리에서는 공주 형무소 재소자와 민간인 400여 명이 학살당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사건 이후 63년 만에 당시 희생자들의 유해가 왕촌리 현지에서 모두 발굴됐습니다.
강진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대로에서 50여m 올라간 곳, 왕촌리 살구쟁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에 수십 구의 유해가 놓여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공주 형무소 재소자와 민간인인 보도연맹원들의 유골입니다.
유골은 대부분 앞으로 엎어진 형태, 2구씩 포개진 모습이 많지만 4구가 뒤엉킨 유해도 나타납니다.
두개골에는 총알 구멍이 나 있고 교도대와 군인이 쓰던 M1과 경찰이 쓰던 카빈 소총용 탄피가 함께 발견됐습니다.
이 한 구덩이에서 수습된 유해만 60여 구에서 80여 구.
발굴단은 유골 형태로 볼 때 군경이 구덩이 양 끝에 희생자들을 앉히고 총을 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박선주 발굴책임자/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 무릎을 꿇고 앉아서 뒤에서 사살당한 거죠. 그러면 머리가 이쪽으로 향해 넘어가는 거죠.]
이들이 학살된 건 우리군이 후퇴하던 지난 1950년 7월 9일.
군경은 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을 트럭에 3-40명씩 싣고 왕촌리로 향했고, 당시 모습이 외신기자에 의해 촬영됐습니다.
주민들은 학살 당시 시내교통이 통제됐으며 한동안 연발 사격이 이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종구/83세, 당시 공주시 중동골 주민 : 열입곱 차량을 여기에서 내려놓았다가 저녁때 어두울 때 끝났어요. 총소리가….]
왕촌리 유해는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3개 구덩이에서 유해 319구를 발굴한 뒤 예산이 없어 발굴이 중단됐다가 이번에 재개됐고 당초 예상했던 대로 400여 명의 유해가 모두 확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