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에 항거했던 대표적 저항 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가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됐습니다. 복원되는 생가는 문학사적 가치와 함께 전통 한옥과 근대 건조물의 변화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동근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단아한 한옥을 둘러싼 담,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는 좁은 문으로 불리는 협문.
일제에 항거했던 대표적 저항 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 복원 현장입니다.
80년대 강진군이 방치된 생가를 매입하고 92년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한 데 이어 20년 만에 추가 복원에 나선 겁니다.
사랑채 앞에 문간채가 있었고 그 사이에 길이 40여 m의 담과 1.5m의 좁은 문이 있었다는 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예전 모습을 되찾게 됐습니다.
[김동남/강진군 문화예술팀장 : 전국에 계신 문학가들이나 관광객들에게 영랑 생가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와서 옛날 김영랑 시인의 시심을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영랑 생가는 시문학파 기념관과 함께 현대문학사의 산교육장이 될 전망입니다.
서울 휘문고보 재학시절 고향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순수시 최초의 전문지인 '시문학지'를 발간해 일제에 항거했던 선생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생가 옆에 조성된 시문학파기념관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남긴 시련과 상처를 엿볼 수 있는 작품과 자료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문학체험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김선기/강진 시문학파 기념관 관장 : 어찌보면 영랑 생가와 이 시문학파 기념관은 1930년대 현대 시문학사를 아우를 수 있는 문학적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달 말 완공을 앞둔 영랑 생가 복원은 문학사적 의미와 함께 20세기 초반 전통 한옥과 근대 건조물 이행기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자료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