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길리엄 감독의 걸작 SF 영화 '브라질'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주인공 집의 난방 장치가 고장 났습니다. 주인공은 중앙 서비스사에 수리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각종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룹니다. 그때 한 무허가 수리공이 찾아옵니다. 아주 간단하게 고쳐줍니다. 주인공은 적이 만족하지만 사실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뒤에 찾아온 중앙 서비스사는 이미 고쳤다는 주인공의 대답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치지 않았으면 고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난방 장치를 어떻게 손댔는지 알아보겠다며 완전히 분해해 아예 못쓰게 만듭니다.
관공서와 은행, 관리사무소 등 각종 공공기관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즉 국민의, 주민의, 고객의 안전과 편리한 삶을 위해 복무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영화에서처럼 거꾸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괴롭히는 곳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른바 원칙을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최근 벌어진 일입니다. 75세인 쉬완 할아버지는 백혈병 환자입니다. 병이 위중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식을 차리고 있는 시간이 하루에 채 몇 시간 되지 않습니다.
쉬 할아버지는 매달 나오는 퇴직 연금 2천 위안(약 35만원)으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 퇴직연금을 찾기 위해 인터넷 은행을 이용하다가 그만 비밀번호를 연속해서 세 번 잘못 눌렀습니다. 팔에 힘이 없어 헛친 것이죠. 은행 계좌는 폐쇄됐고 이를 풀려면 새로운 비밀번호를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쉬 할아버지의 아내는 은행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병이 위중한 고령자라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사정이라고. 하지만 은행은 규정상 반드시 '본인'이 와서 비밀번호를 바꿔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당장 돈을 찾지 못하면 생활을 할 수 없다보니 쉬 할아버지는 은행에 가기로 했습니다. 일반 차량으로는 도저히 옮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20 응급구조대에 출동을 요청했습니다. 쉬 할아버지는 응급차에 실려 문제의 은행 지점으로 향했습니다. 은행 문 앞에서 산소 호흡기까지 착용한 쉬 할아버지는 들것에 옮겨졌습니다. 쉬 할아버지의 부인이 은행 출입구 경비원에게 사정 했습니다. 객장 안에 들어가기 곤란한 상황이니 담당자가 나와서 일을 처리해달라고. 끝내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구조대원 5명이 들것을 들고 은행 객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쉬 할아버지는 지장을 찍고 비밀번호를 바꾸는 모든 과정을 '본인이 직접' 해야 했습니다.
이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을 만큼 위중한 노인을 비밀번호 하나 바꾸는 일 때문에 은행에 직접 오게 하는게 말이 되냐는 비난이 빗발 쳤습니다. 은행측은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은행장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지점의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8년 저쟝에서는 의식이 혼미한 80대 노인이 은행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습니다. 가족을 통해 새로 받으려고 했지만 역시 은행측은 '본인이 직접 와야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노인은 가족에 업혀 은행 지점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같은 해 윈난에서도 중병으로 입원한 94세 노인이 정부의 구호금을 받기 위해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딸이 대신 일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은행에서는 반드시 본인이 나와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읍소를 하자 은행측은 구호 관련 증명서를 만들어 와라, 병원 확인서를 가져와라, 호적 등본을 비롯한 가족 모두의 신분증을 준비해라 각종 서류를 요구했습니다. 가족들은 이 모든 것을 일일이 준비했지만 은행에서 4번이나 문전박대 당해야 했습니다. 2009년 광시성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색전증으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가족을 통해 은행 업무를 보려다 끝내 거절 당했습니다. 매번 여론이 들끓었고 은행들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별무소용입니다.
중국 은행의 문제라고요? 우리나라의 한 회사원에게서 들은 일화입니다. "몇년전 아프리카로 팀을 이끌고 출장을 갔다 왔습니다. 40여일을 그곳에 머문 뒤 돌아오려고 현지 공항에 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작업 장비에, 회사로 가져갈 각종 결과물에, 각 팀원들의 짐까지 겹치다보니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규정중량을 훨씬 초과했던 것입니다. 상당한 돈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그러자 항공사측에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현재 1등석과 비즈니스석이 거의 비어있는데 일반석 대신 이런 특별석 표를 끊으면 짐을 모두 실을 수 있게 돼 오히려 20% 이상 비용이 덜 들어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회사 비용도 아끼고 피곤한 팀원들이 한국까지 열 몇 시간 여정을 편하게 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생각했죠. 회사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 칼에 거절 당했습니다. 회사 담당자의 말은 회사 내규상 비즈니스석 이상은 임원만 탈 수 있어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사 지적이 사항이 되는 만큼 그냥 초과 중량 벌금을 물고 일반석을 타고 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 담당자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규정에 없는 일을 하자니 곤란했겠죠. 또 이런저런 예외를 인정해주다보면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겠죠. 하지만 결과는 대단히 비상식적이지 않습니까? 조직이 그 정도 융통성도 발휘할 수 없다면 너무 꽉 막힌 것 아닐까요?"
대규모의 조직 사회를 관리하다보면 원칙과 규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그 원칙과 규정에 매몰되다 보면 그 속의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바쁘고 힘들어도 국민을, 주민을, 고객을 위해 일한다는 본래의 존재 의미를 되새긴다면 더욱 상식적인 일처리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앞서 문제의 은행이 발표한 사과문에 이미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계좌 비밀번호는 고객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지키는데 직접적으로 관련된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당연히 관련 규정이 엄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곤란한 고객들을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특별한 사정의 고객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고객의 곤란을 해결해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습니다만 이에 소홀했습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몰라서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