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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포토] 100년전 산사태에 묻힌 북한산성 행궁 모습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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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사 시 북한산성으로 들어간 왕이 머물던 행궁(行宮) 중에서도 왕이 거처하기 위한 사적 공간인 내전(內殿) 터가 확연한 상태로 발굴됐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은 사적 479호 고양 북한산성 행궁터에 대한 올해 제1차 발굴조사 결과 숙종 38년(1712)에 준공돼 사용되다가 1915년 산사태로 매몰된 내전의 구조를 거의 온전하게 알려주는 바닥 시설을 확인했다고 11일 말했다.

북한산성 행궁은 왕이 집무를 보는 공적 공간으로 앞쪽에 위치하는 외전(外殿)과 왕이 거처하는 내전의 두 구역으로 구분됐다.

이번 조사 결과 내전은 마루와 온돌을 갖춘 전면 28칸에 측면 4칸(16.45x7.92m), 중심축이 동북 방향인 중심 건물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행각(딸린 건물) 구조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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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내전지_5

중심 건물로 들어가는 전면 중앙에는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御道)와 대문이 있다.

조사단은 "이들 건물터는 재료와 축조 방법에서 당시 성숙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데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설한 구들이 남아 흥미롭다"면서 "또한 중심 영역을 둘러싼 배수로 처리와 뒷면 계단, 내전 영역과 바깥을 구분하는 내ㆍ외곽 담장터는 궁궐 내전에 걸맞는 위용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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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은 내전 터가 북한산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을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 안에 있음으로써 후대에 훼손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까닭에 1915년 무렵 수해로 붕괴했을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됐다고 덧붙였다.

역대 행궁터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드러난 이런 발굴 결과는 행궁 원형 복원에도 결정적인 토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조사 결과 행궁은 1915년 7월 동쪽 골짜기에서 급작스럽게 불어난 물길로 인한 산사태로 훼손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때 매몰된 건축 석재와 용문ㆍ봉황문ㆍ수자문ㆍ거미문ㆍ화문 등의 각종 막새기와, 치미·용두·잡상 등의 기와류, '己巳'(신사)ㆍ'辛訓'(신훈) 등의 글자를 적은 수키와, 건축물에 사용한 철물이 다량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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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 편찬된 북한산 일대 지리지인 북한지(北漢誌)를 보면 이곳 행궁은 전체 115칸 규모다.

이 중에서도 내전 영역은 54칸 규모로 내전, 좌우행각방(左右行閣房), 청(廳), 중문(中門), 대문(大門), 수라소(水刺所), 측소(厠所)로 구성됐다고 한다.

현장설명회는 15일 오전 11시에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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