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부 부처에는 업무 수행을 위해 배치된 공용 차량이 있다. 물론 출퇴근 같은 사적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일부 부처들이 업무용 차량을 고위 간부들에게 기사 딸린 전용 차량으로 내줬다 적발됐다.
지난 12일 오전 7시쯤 서울 용산의 방위사업청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출근 차량들을 하나 둘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차는 따로 있었다. 차장과 본부장 등 고위간부 4명이 탄 차량. 자료를 확보한 상태여서 차종과 차량 번호를 알고 있었다.
오전 8시, 이거 허탕치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커질 즈음 검은색 대형 차량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번호를 확인했다. 맞지 않았다. 함께 나온 취재진에게 '아니다'라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아뿔싸'... 차량 앞번호와 뒷번호를 헷갈렸다. 함께 기다리던 취재진이 지적해준 뒤에야 실수한 사실을 깨달았다.
차를 놓친 뒤 초조함은 더욱 커졌다. 다리를 다쳐 절뚝 거리면서도 불안감에 같은 자리를 서성거렸다. 그 때 같은 차종의 검은색 승용차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정문으로 다가왔다. 해당 차량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다가가자 쏜살 같이 빠져나갔다.
▶업무차량이 출·퇴근용?…고위 공무원 멋대로 사용 (9월14일자 리포트)
작전이 필요했다. 이번엔 탑승자 쪽은 마이크를 든 기자가, 차량 앞쪽은 오디오맨이 맡기로 했다. 얼마 안 돼 차량 한 대가 더 들어왔다. 차량 번호를 보니 차장이 탄 차량이었다. 차쪽으로 다가가자 역시 빠져나가려 했고 급히 차쪽으로 몸을 붙였다.
창문에 대고 "잠시만요"를 연거푸 외치며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실랑이 끝에 차는 취재진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다급했던지 입구가 아닌 출구쪽으로 차를 대 차단기에 막혀버렸다. 정문 방호요원이 급히 차단기를 열었고 차는 유유히 사라졌다.
갑작스런 소란에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이 나와 연유를 물었다. 취재가 끝난 뒤 취재 내용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업무용 차량 사용지침 위반. 방위사업청 사람들은 상부에 보고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공식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안전행정부가 대통령령인 공용차량관리규정에 근거해 만든 공용차량 관리·운영 매뉴얼은 업무용 차량을 출퇴근 같은 사적 용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청은 이를 어기고 차장과 본부장급 간부 등 3명을 위해 업무용 차량에 기사까지 배치해서 전용차량처럼 사용하게 했다고 인정했다.
방사청측은 공식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업무용 차량을 업무 이외 목적으로 사용한 것 확인했다"면서 "출퇴근시나 개인적 용무가 있을 때는 대중 교통 이용하도록 하고 업무용 차량의 본연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시정조치 하겠다"고 밝혔다.
특허청과 산림청의 경우 청장 외에에는 전용 차량이 지급되지 않는데도 부기관장인 차장을 위해 업무용 차량을 전용차량으로 고정배차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산림청은 기관 특성상 동선이 긴 경우가 많아 부득이 차량을 제공했다면서도 출퇴근에 이용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편법 사용도 잇따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전용 차량이 승용차 5부제에 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의전용 차량을 일부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고위간부도 대형 차량을 사실상 고정 배차해 사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도 엉망이었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실이 43개 중앙부처의 차량운행일지를 조사한 결과 83%가 넘는 36개 부처가 일지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 특히 이를 감시해야 할 감사원에서도 감사교육원과 연구원 등 산하기관이 지난해 차량일지를 아예 작성하지 않는 등 허술하게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더 황당한 것은 안전행정부였다. 안전행정부는 앞서 언급한대로 공용차량 관리·운영 매뉴얼을 만든 주무부처다. 총괄 관리 책임도 있다. 하지만 안행부는 자신들이 만들어 내린 차량운행일지 서식조차 지키지 않았다. 일지 작성도 허술해 곳곳이 빈칸이었다.
매뉴얼을 만든 제도총괄과 담당자는 운행일지 서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에 자기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면서도 타 부처가 제대로 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는데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하든지 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안행부에서 차량 관리를 담당하는 운영지원과에서는 차량운행일지 서식 자체가 옛날에 만들어져 지금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해당 서식을 필요에 맞춰 바꿔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어 그렇게 한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기 부처에서 만들어 타 부처에 내린 서식을, 자기 부처에서조차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다면 이를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될까 의문이다. 또한 서식을 별도로 만들어 쓸 수 있게 돼 있는 것은 맞지만 서식의 관리 항목이 누락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안행부의 운행일지 서식에는 용무와 경유지 같은 항목이 누락돼 있었다.
물론 운영지원과 담당자의 말도 고려할 부분이 없지 않다. 서식이 현실에 맞지 않아 수차례 고칠 것을 건의했지만 제도총괄과 담당자가 계속 바뀌어서 그런 건의가 반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꼭 이런 부분을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현재 47개 중앙부처의 업무용 차량은 1만 1천대가 넘는다. 이제라도 허술한 관리실태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