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미 양적완화 축소…한국 안전하지만 대비 필요"

글로벌 투자은행·자산운용사·증권사·석학들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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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가 시작되면 국제금융시장은 한바탕 요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지난 5년간 전 세계 곳곳으로 풀린 달러가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간 증권·부동산에 외국자금이 스며들었던 국가들은 벌써 자산가격이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고 있다. 위기를 앞둔 나라들은 자본유출을 막고자 안간힘이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외환시장 개입도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탄탄한 나라는 '우리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를 떠난 돈을 품을 계획도 세우고 있다. 떠나는 달러를 서로 잡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또 한국 경제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연합뉴스는 8일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증권·자산운용사, 석학 등에 이에 대해 질의를 했다.

◇ QE축소 시대, 미국은 웃겠지만

QE축소 개시는 미국경제에는 호재로 평가된다. 극약(劇藥)을 점차 끊는 환자와 같아서다.

줄리아나 리 도이치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QE축소의 시작은 미국의 성장 모멘텀과 고용상황이 개선된데 따른 것이란 점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섭 맥쿼리증권 주식총괄 대표는 미국의 경기개선을 주택시장의 회복으로 풀이했다.

그는 "신규주택 착공 회복세가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집값 상승도 민간소비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신규투자 역시 성장을 떠받칠 것"이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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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SC) 석좌교수는 QE축소로 미국 경기가 다소 주춤할 수도 있다고 봤다. 시장의 유동성 축소 기대심리로 장기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미국의 회복세를 제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유럽은 어떨까.

강재준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리서치본부장은 "유럽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독립적인 양적완화를 하고 있어 애초 미국 QE의 영향이 덜 미친단 것이다.

그는 "아시아에서도 중국은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여력과 경제규모,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며 "외부변화의 영향을 적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종학 베어링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그러나 "아시아 일부 신흥국가는 미국의 긴축정책에 굉장히 취약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 위기 앞둔 국가들 운명은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QE축소 가능성에 벌써 자본유출을 겪는 국가들을 주시하고 있다.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이다. 영문 앞글자를 딴 이른바 'BIITS'라고도 부른다.

임태섭 대표는 "BITTS 국가는 환율이 크게 올라 물가상승 상승압력이 심해지고 있는데다,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가까운 시일 안에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재준 본부장도 "QE축소 우려감에 아세안과 인도에 유입되었던 외국 투자자금들이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최근의 금융시장 혼란과 경제전망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가 외환위기는 피해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줄리아나 리 이코노미스트는 "BITTS 국가에서 자본유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이들 국가의 성장률 둔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와이호 렁 바클레이즈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국가에 1997년식의 급격한 외환위기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현재의 위험상황은 당시보다 더 느리고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학 CIO 역시 "이들 국가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1990년 후반과 비교해선 경상수지 적자, 외환보유액, 재정수지 등이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한국은 안전자산…자산 재배분의 승자될 것" 외국계 금융사들이 보는 한국은 어떨까.

이들 대부분은 한국이 BITTS와 같이 위기를 겪는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대외위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이호 렁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한국 주식·채권을 외국인이 순매하는 것은 투자자들이 한국에 안전자산(safe haven) 지위를 부여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주변국보다 훨씬 튼튼하다는 점에서다.

현재 한국의 총 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9.1%로 1999년(28.6%) 이후 가장 낮다. 외환보유액은 3천310억9천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다. 경상수지도 17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투자자들은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가 더 탄탄한 국가로 리스크(자산)를 재배분할 수 있다"며 "한국은 이 상황에서 승자(winner)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줄리아나 리 수석이코노미트 역시 "QE축소로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보다 개선된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한국은 폭풍을 잘 버텨낼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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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섭 대표는 "경상흑자·외환보유액을 고려하면 한국은 충분히 외자유출의 영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며 "이는 QE축소와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영향을 충분히 완충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강재준 본부장도 "양적완화 기간에 한국경제로의 자금 유입은 국채 투자자금 일부를 제외하면 크지 않다"며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보다 세계경제 회복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한국에)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 "다른 신흥국 위기의 파급효과 대비해야"

한국의 객관적인 지표는 건전하지만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위기상황이 오면 국경을 넘어다니는 자본은 이성보단 비(非)이성에 판단을 의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손성원 교수는 "과거 외환위기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증시와 은행외채 부문에서 어느 정도 외자유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면 주가는 빠지고 원화가치도 하락한다. 또 시장금리는 더욱 올라가게 된다.

그는 "한국의 경제상황은 지금도 좋지 않지만, 성장률이 생각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한국은행은 (외화) 유동성을 더 확보하고, 당국은 필요시 외환보유고를 쓸 각오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학 CIO는 "한국이 QE축소의 악영향을 크게 받을 걸로 생각하진 않지만, 외환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다른 주변 신흥국들로부터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령, 한국과 금융·실물이 연계된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한국도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그랬듯 위기가 전염되면서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한번 투자자들이 한국보다 안전한 미국, 일본 등으로 옮겨가면 한국은 단기간의 급격한 자본유출로부터 스스로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며 "한국정부는 위기 전개상황을 보며 주요국과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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