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보험 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중국 최대 보험판매업체의 사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돈 900억원에 달하는 공금을 가지고 캐나다로 달아났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런 설에 대해 중국의 보험감독 기관과 해당 회사는 부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정확히는 '사라진 것은 맞다', '현재 조사중이다', 다만 '횡령한 돈의 정확한 액수를 확인해줄 수는 없다', '문제의 사장이 다시 돌아올지, 다시 회사 일을 볼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라진 천이(陳怡) 사장은 중국 보험업계의 수퍼스타였습니다. 우선 중국 금융업계 간부들 가운데 최강으로 평가 받았던 미모로 유명합니다. 천 사장은 2009년 판신보험대리공사라는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보험대리사는 보험사들의 위탁을 받아 보험상품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입니다. 판신보험대리사는 원래는 손해보험 상품을 주로 다뤘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명보험 판매로 이름을 떨치던 그녀를 스카웃 하면서 회사는 면모를 일신했습니다. 천이가 사장으로 부임한 뒤 2년 만인 2011년 말 판신은 신규 보험 유치액 1.5억 위안(약 273억원)을 넘겨 업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음해인 2012년 말에 다시 신규 보험 유치액을 3배 넘게 늘려 4.8억 위안을 달성했습니다. 중국 보험업계는 유래없는 실적에 경악했습니다.
천 사장의 이런 놀라운 성과에는 검은 비밀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보험상품은 고정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 사장은 이를 어기고 소비자들에게 높은 고정 수익률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를 맞춰주기 위해 보험상품을 판 대가로 받는 수수료의 상당 부분을 고객에게 주는 보험금에 충당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제는 이런 영업 방식이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 보험사들은 처음 고객을 유치했을 경우에는 보험대리사에게 높은 수수료를 줍니다. 반면 이 고객이 계약을 갱신하거나 연장할 경우의 수수료는 훨씬 적습니다. 천 사장은 하지만 이런 연장이나 갱신 고객에게도 똑같이 높은 고정 수익률을 약속했습니다. 고객들이 보험을 갈아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의 수수료를 희생하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안됐고 새로 들어오는 고객의 보험료까지 동원해 '돌려막기'를 했다는 설이 공공연히 퍼져 있습니다.
이런 영업 방식은 앞에서 본대로 놀랄 만한 고객 유치 실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그것은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격이었습니다. 무조건 앞을 보고 달려야만 했습니다. 멈춰서는 순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올해 초 종말이 왔습니다. 중국의 보험 감독기관이 판신보험대리사에 대한 조사에 나서 고정 수익률을 보장한 영업 방식을 위법행위로 적발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받은 벌칙 자체는 심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벌금 5만 위안, 우리 돈 1천만원이 채 안됩니다. 문제는 더 이상 같은 방식의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었습니다. 호랑이 등 위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신규 고객 유치가 부진해지면서 속속 만기가 돌아오는 고객들의 보험금을 메워주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먹튀'를 선택한 것 아니냐고 중국 보험업계는 추정합니다.
900억원, 대륙다운 스케일입니다. 중국 보험업계는 천 사장이 이 돈을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수료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고객들의 보험료나 보험금에까지 손을 댔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천 사장이 지속할 수 없는 영업방식을 고집했다는 점, 또 거액의 돈을 오랜 시간에 걸쳐 빼돌렸을 것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먹튀'를 계획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더 정확한 손실 규모를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일부 고객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줄 수 없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 경우 보험상품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집단적인 해약 사태로 이어질 수 있어 중국 보험업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입니다.
중국이 공산주의 대신 특색 사회주의, 즉 시장경제의 운용 방식을 대폭 받아들인지 3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 경제의 겉모습은 완전히 바꼈고 주식과 금융, 보험 등 시장경제의 시스템을 대부분 갖췄습니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감독,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취약합니다. 특히 시장경제의 핵심 요소인 '신뢰'라는 가치체계를 구축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보험대리사 사장이자 유명 금융계 간부가 한순간 고객 돈을 가로채 '해외 먹튀'로 돌변하는 황당한 사건은 이런 중국 경제의 부조화가 일으켰다는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