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억이면 제가 생각한 영화를 만들기에 충분했어요. 대진운이 나쁘지 않느냐고요? 봉준호 감독님의 신작과 같은 시기에 개봉한 자체가 영광이죠"
그야말로 독한 신인 감독의 등장이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이 넘쳤다. 영화에 대한 자기 소신이 뚜렷했다. 작품에 대한 질문에는 주저함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파죽지세 흥행 중인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이하 '더 테러')를 연출한 김병우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7월 31일 개봉한 '더 테러'는 마포대교 폭탄테러라는 사상 최악의 재난 사태를 뉴스 진행자가 독점 생중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430억 대작 '설국열차'와 같은 날 맞붙었던 '더 테러'는 개봉 5일 만에 제작비를 회수하고, 플러스 알파 수익을 내고 있다. 관객 평가는 '설국열차'를 능가하고 있다.
'더 테러'는 당돌한 영화다. 테러 사건 생중계라는 도발적 소재도 소재지만, 영화를 전개하는 형식이 독특하다. 98분의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는 스튜디오 안에 머물러 있고, 포커스는 남자 주인공 하정우에게만 맞춰진다. '하정우의 원맨쇼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이 흥미진진한 원맨쇼를 연출한 김병우 감독의 공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병우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집필한 건 약 5년 전. 2001년 터진 미국의 9.11 테러 사건이 모태가 됐다.
"대학(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후 상업 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지금의 한국영화보다 더 재밌는 것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졌다. 기존 스릴러 영화 같은 건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과는 다른 형식의 스릴러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테러'라는 소재는 김병우 감독의 머릿속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대한민국에서 테러가 터진다는 가정을 했을 때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어딘가를 생각하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마포대교'였다. 금융, 정치, 언론의 중심지인 여의도로 통하는 '마포대교'는 국민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테러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순간 엄청난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왜 방송국이며,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왜 앵커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병우 감독은 테러에 대처하는 미디어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테러라는 건 미디어가 동반되어야지 파급력을 가지는 공포로 확산된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처박히는 것 자체를 테러라 할 수 없고, 그것이 전 세계에 라이브로 중계되는 그 과정을 통틀어 테러라고 생각했다. 언론은 저널리즘에 근거해 보도를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하는 실수들이 테러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는 앵커 윤영화(하정우 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테러범과 생중계를 벌이는 과정에서 미디어에 대한 냉소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도 쏟아진다. 감독은 경찰과 정부 등 공권력에 대한 날 선 시각도 견지하고 있다.
"직접적인 사회 비판이나 관객 선동의 의도는 없었다. 마포대교가 폭파된다면 언론, 경찰, 정부 기관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시뮬레이션 해봤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모습들을 이야기에 녹여낸 것이다"
비판의 수위가 너무 센 건 아녔느냐는 기자의 말에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영화가 가진 힘과 메시지에 매력을 느껴 투자사들이 돈을 댔고,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스태프들도 개런티를 낮춰 우리 영화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방송국이라는 거대한 이익 집단, 스튜디오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로 활용하기 위해 김병우 감독은 치밀한 취재 기간을 가졌다.
그러나 미디어 사회에 대한 묘사만큼이나 많은 공을 들였던 건 캐릭터 창조였다. 그는 "한물간 국민 앵커 '윤영화'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 성격이 다소 차갑고 건조한 부분이 있어 캐릭터의 생동감을 살리는데 가장 많은 신경을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윤영화' 역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소화한 하정우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하정우 씨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내가 감명 깊었던 건 그렇게 연기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70%가 윤영화라는 인물에 집중돼있다. 배우 스스로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을 것이다. 그는 내가 말하는 바에 대해 전부 흡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플러스 알파 시켜서 결과물을 내놓았다. 스튜디오 안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있음에도 정말 세밀하게 연기를 해줬다"
제작비 35억이 투입된 중·저예산 상업영화인 '더 테러'는 압축적인 프로덕션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총 28회차의 촬영 중 18회차가 경기도 파주의 세트장에서 이뤄졌다. 이외 헬기 차량을 동원한 장면이 9~10회차 정도였다.
소재나 형식이 할리우드 영화 '폰 부스'나 '베리드'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자 김 감독은 "그 영화들은 안 봤을리 없고, 그 작품들의 성과를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참조했던 건히치콕의 '이창'이나 시드니 루맷의 '12인의 성난 사람들' 같은 작품이었다"라고 레퍼런스에 대한 일부 의견에 대해 답했다.
이 영화가 6일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200만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재미'라는 미덕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최고의 목표였다. 음식으로 치면 반찬 수십가지가 있는 정식이 아니라 맛있는 짜장면 한그릇 같은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테러 사건이 벌어지고 마무리되는 시간과 상영시간이 80%가 일치하는 '더 테러'는 예상밖의 결말로 관객들을 통쾌하게 만들기도, 또 다소 아쉽게 만들기도 했다. 관객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이 결말은 확실히 우리가 상업영화 틀에서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말은 아니다.
"결말은 시나리오 초고 단계부터 최종본까지 변함 없었다. 이 영화는 윤영화로 시작해서 윤영화가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윤영화의 영웅담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연한 계기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영화'라는 예술에 취미를 붙이게 됐다는 김병우 감독은 33살에 만든 데뷔작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씨네 2000이라는 제작사를 만난 것도 그렇고, 하정우 선배를 만난 것도 그렇고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쁜 것은 데뷔작임에도 아쉬움없이 하고 싶은 것은 다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 "쉽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많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탐구한 결과물을 내놓고 싶다. 창의적이면서도 내 색깔이 살아있는 영화를 앞으로도 만들어 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사회성 짙은 스릴러를 만들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스릴러 장르만 고집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개인의 취향상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를 만들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