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고 초라한 죽음이었다. 브라운관을 호령하던 김종학 PD. 분당의 좁디 좁은 오피스텔 구석에 쓰러진 그의 모습은 카리스마 넘치던 과거와 그의 업적을 한순간에 지워버렸기에 더욱 서글픈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한 번 뵌 적이 있는 고등학교 선배. 그가 남긴 유서를 보면 조여오는 검찰 수사의 칼날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강압 수사의 흔적은 결국 검찰이 찾아내야겠지만 60대 노구를 상대한 젊은 검사의 집요함이 그를 무너뜨렸음은 분명해 보인다.
000 검사
자네의 공명심에
음반업자와의 결탁에 분노하네
드라마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에게 꼭 사과하게
함부로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모래성으로
만들며 정의를 심판한다(?)
귀신이 통곡할쎄.
처벌 받을 사람은 당신이네.
억지로 꿰맞춰, 그래서 억울하이 (故 김종학 PD의 유서에서)
김종학 PD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날, 우연히 현대그룹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10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정몽헌 회장을 회고하는 사진전이 열린다는 것이다. 2003년 8월 4일,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 들었다. 현대그룹 사옥 회장실의 창문 틈을 비집고 정몽헌 회장이 몸을 날렸다는 비보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계동에서 비교적 가까운데 있는 YTN이 방송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제일 먼저 달려갔던 것 같다.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한 두 사람, 닮은 점 하나 없는 그들의 죽음에 이토록 비슷한 감정이 몰려오는 이유는 뭘까?
모래시계 등 수작을 쏟아내며 최고의 감독 자리에 오른 김종학 PD, 아버지 故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굴지의 현대그룹을 이끌던 정몽헌 회장. 돌이켜보니 두 사람의 인생 항로에는 너무나 비슷한 코드가 흐르고 있었다. 거침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며 성공가도를 달린 성장기, 정상을 맛 본 인생의 황금기도 그러려니와 드라마의 흥행과 사업 실패,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과 투자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걸은 인생은 그 얼개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삶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게 한 마지막 일격, 검찰의 수사. 김종학 PD는 출연료 체불 등의 혐의로, 정회장은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사정기관에 끌려다니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이다.
세 살 차이의 그들은 어쩌면 동시대에 같은 아픔을 겪다가 불행하게 세상과 작별했는지도 모른다.(정몽헌 회장이 1948년생, 김종학 PD는 1951년생이다) 조금만 더 상황이 괜찮았었다면, 그들에게 용기를 줄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인재를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현대그룹 서울 연지동 본사에서는 故 정몽헌 회장 10주기 추모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남편에 이어 현대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현정은 회장은 고인을 위해 여러가지 추모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故 정몽헌 회장을 기리며 사진전에 출품된 사진 몇장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