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증세라고 말은 못 꺼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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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5년 조세정책의 밑그림이 어제(23일) 발표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마련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 공청회 자리에서였다. 발제자로 나선 안종석 선임연구위원은 "새정부는 다양한 복지제도의 확충을 제시했으며, 그 재원 마련 방법으로 세율인상이나 세목조정 등의 직접적인 증세방법보다는 비과세-감면의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금융소득 과세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청회내내 직접 증세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 기여금의 부담을 올리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만 주장했다. 소득세는 면세자를 줄이고, 부가세는 적용대상을 넓혀 세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율을 고정시키는 대신 감세를 줄이고, 부가세 부과 대상을 넓힌다는, 다시말해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는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그러면서 "세입 확충의 폭과 방법에 대해서는 추후 복지재원 수요나 잠재성장률 수준,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고려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며 증세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뭔가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춘 듯한 결과라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어제 발표가 사실상 증세가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조세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지금 증세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어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세율을 올리거나 세목을 신설해서 세금을 더 걷는 것을 의미한다"며, "'증세'라는 단어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어제 발표내용은 사실상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사실상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증세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바뀌었으면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국책기관의 일개 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은근히 언론에 흘리는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안 위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10년 기준으로 19.3%로 미국(18.3%), 일본(15.9%, 2009년기준)보다 높지만, 영국(28.3%), 프랑스(26.3%), 독일(22.1%) 등 유럽 선진국은 물론, OECD 평균(24.6%)보다도 낮은 편이다. 조세부담률에 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부담률을 더한 국민부담률을 계산하면 선진국과의 차이는 더 커진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부담률은 조금 더 늘어나도 무방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때는 조세부담률이 증가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때는 조세부담률이 1.2%P씩 늘어, 전두환 정부( 0.4%P)와 김영삼 정부(0.6%) 때보다 상대적으로 증가 폭이 컸다. 이처럼 조세부담률이 높지 않은 편인 데다 앞으로 '돈 나갈 데'는 많을 것 같다는 게 문제다.

안 위원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로 복지지출이 2009년 대비 9.5%에서 2050년 21.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복지 정책 등 대선공약을 지키는 데만 앞으로 5년간 135조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원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대책을 위해서도,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오염물질 배출이나 에너지 수요억제를 위해서도, 통일을 대비해서도 막대한 재정이 드는 만큼 점진적인 재원확보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세없다'는 원칙만 고수하다보니 자꾸 편법을 찾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라도 조세형평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야 나쁠 게 없지만, 편법은 조세정책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증세가 바른 길이라면, 정부는 증세를 전제로 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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