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베이비’ 탄생을 알리는 오늘자 영국 신문 1면입니다. 당연히 1면 톱입니다. ‘기념판’이란 부제를 단 신문도 있습니다. 한 신문은 1면부터 무려 19면까지를 관련 소식으로 채웠습니다. 한마디로 도배했습니다.영국 최대 일간지 더 선(THE SUN)은 제호를 ‘아들’을 뜻하는 더 선(THE SON)으로 바꿔 달았습니다.
편집자의 재치라고 해야 할지, 지나치다 라고 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1면을 넘기면 더 합니다.
한 신문은 양면을 털어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임신 전부터 출산 직전까지 사진을 빼곡히 실었습니다. 기념판이라고 할 만 하네요. 그만큼 ‘로열베이비’라는 소재가 속된 말로 장사가 되는 아이템이란 뜻일 겁니다.
영국 언론은 왜 ‘로열베이비’에 열광했을까요? 우선 왕실을 지지하는 다수 영국인들의 심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애국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영국인들은 왕실 아기를 통해 영국의 옛 영화를 되살리고 싶어합니다. 영국 왕실은 1990년대 다이애나비 사망과 각종 스캔들로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의 결혼과 지난해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 기념식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왕자 탄생으로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생기를 불어 넣은 겁니다 영국 왕실은 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그리고 태어난 왕자까지 4대의 왕위 계승 구도가 확정됐습니다. 아이 이름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영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에 ‘조지’가 오른 점도 눈 여겨 봐야 합니다. 조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친이 사용했던 이름이기도 하고 6명의 영국왕이 사용했던 상징성이 큰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로열베이비’는 허덕이는 영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유로뉴스는 지난달 부터 지금까지 왕실 아기 관련 파티 용품과 기념품 구매에 쓴 돈만 우리 돈 4천 5백억원이 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렸던 윌리엄-케이트 결혼식 때보다 소비가 더 늘었다는 겁니다.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던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추억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미들턴 왕세손비가 고 다이애나 비가 윌리엄 형제를 낳았던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출산한 점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패션의 아이콘이고 자선 사업에도 몰두해서 닮은 꼴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세간의 관심은 윌리엄-케이트 부부가 왕자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영국 왕실은 전통적으로 부모는 한 발 물러나 있고 유모나 집사가 왕족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나 고 다이애나비는 이 전통을 깨고 평민적 방식을 과감히 도입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아이를 학교에 직접 데려다 주고 운동회에도 참석하는 보통 부모같은 모습입니다. '로열베이비'는 영국인의 명예와 돈, 사랑, 그리고 육아까지 갖출 건 다 갖춘 소재였기에 영국 언론은 영국인과 함께 춤을 춘 겁니다.
그러나, 세계인 모두가 흥분할 일은 아닙니다. 미국 CNN은 ‘케이트 따라하기’ 또는 ‘케이트 효과’로 이름 붙여진 현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로열베이비’가 사용할 거란 소문이 돈 물건을 경쟁적으로 사들이는 건 자기 아이에게만은 최고의 투자를 하겠다는 부모의 비뚤어진 경쟁심이 빚어낸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도 시리아의 한 난민 캠프에서는 지금도 매일 13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며 로열베이비에 열광하는 세상을 비꼬았습니다.
오늘자(23일) 프랑스 일간 ‘르 몽드’입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로열베이비’ 관련 기사는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출산 다음날(24일) 신문에서도 4면 하단에 사진 한장과 기사로 담백하게 처리했습니다. 세계적 이벤트에 기사 비중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게 바로 언론사로서의 ‘르 몽드’의 생각이고 소리 없는 외침이구나 싶었습니다. 빅 이벤트에 묻혀 제가 잊고 있고, 잊었던 건 무엇일까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