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피의 월요일'…"軍 발포로 시작된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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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이집트 군부의 발포가 사실상 대학살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간 군은 무장 시위대의 습격 때문에 화기를 사용했다고 변명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19일 "카이로 대학살: 공화국수비대 총격의 전말"이라는 제목으로 8일 수도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본부 앞에서 벌어진 발포 사건('피의 월요일')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의료진, 시위대, 목격자 등의 발언과 동영상·사진을 토대로 오전 3시17분부터 총격이 끝난 오전 7시까지 약 4시간의 상황을 분석하고서 군이 조직적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우선 사건은 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현장에서 수 백m 떨어진 고층 아파트에 있던 한 40대 엔지니어는 "무장한 경찰차와 다수 군인이 바리케이드 약 100m 근처까지 접근하더니 최루가스를 발사했고 2분쯤 뒤에 다수의 화기로 발포했다"고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비디오로 현장 상황을 촬영했다.

세이프 가말이라는 가명으로 보도된 이 취재원이 찍은 28분 남짓의 동영상은 그의 친구에 의해 유튜브에 게시됐다.

여기에는 최루가스가 난무하고 시위대를 향해 군이 무수히 발포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나 부상자는 평화롭게 기도하던 시위대를 향해 군이 갑자기 발포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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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 치료를 위해 투입된 의사, 수녀도 총격을 당했고 군경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둘렀다는 주장도 나왔다.

연좌시위에 참석했다가 기도를 하던 공격이 시작돼 산탄과 일반 실탄 등 세 번이나 총격을 당한 예히아 무사 박사는 "실탄을 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약 20m 거리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의 산탄총에 왼쪽 무릎을, 일반 실탄으로 오른쪽 무릎을 맞았다.

그리고 세 번째 총격에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절반 이상 잃었다.

군이 높은 건물에 올라가 시위대 중심부에서 벗어난 비무장 민간인을 저격했다는 목격자도 있었다.

임시 병원에 있던 의사 알라 모하메드 아부 제이드는 갑자기 밀려드는 환자와 시신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그것은 대량학살이었다"며 "어떤 환자는 가슴과 등에 모두 총탄이 박혀 있었는데 한쪽으로 뛰다 총을 맞고 다시 반대쪽으로 가다 다시 맞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무장 오토바이 15대가 접근하며 먼저 총을 쏘았다고 군이 주장했지만, 일주일간 31명을 인터뷰하고 비디오를 분석했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군이 제시한 시위대의 선(先)도발 증거라는 것도 사실은 목격자 대부분이 주장한 공격 시작 시점을 30여 분 지난 뒤 시위대가 돌을 던지는 수준이었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가디언은 학살이 시작된 이후 무르시 지지자 최소 3명이 일종의 화기 같은 것을 사용하는 장면을 군부 대변인이 제공했다고도 전하면서도 여전히 군의 해명이 의심스럽다는 태도를 취했다.

또 현장에 있던 군인을 인터뷰하게 해달라는 4차례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집트의 독립 언론과 관영 매체에서 비판적인 보도가 두드러지게 줄었고, 군부에 의해 쫓겨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세력기반인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인 TV 채널은 문을 닫았다고 지적했다.

당국은 발포 사건으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 51명과 경찰 2명, 군인 1명 등 54명이 사망하고 최소 435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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