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워싱턴 외곽에서 운전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라디오를 켜 놓고 있었다. 103.5 메가헤르츠 WTOP 채널이었다. 서울의 SBS FM 라디오 채널과 같은 주파수이기도 해 즐겨 듣는 채널이다. 갑자기 요란한 시그널 뮤직과 함께 '브레이킹 뉴스'가 터져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에이지애너' 에어플레인 크래시…! 사우스 코리아…" '아뿔사! 큰 사고가 났구나!' 본능적으로 운전대를 워싱턴 시내 방향으로 틀었다. SBS 지국이 있는 내셔널 프레스 빌딩으로 향했다. MSNBC와 FOX 채널을 틀어놓고 사태 파악에 돌입했다. CNN은 서울에서 모니터하고 있을 터였다. 오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 SBS 본사였다. 야간 당직 근무자의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비상연락망을 뒤져 취재에 돌입했다. 아침 뉴스 속보는 급한 대로 화상전화 생방송으로 참여해 뒤죽박죽 잡히는 미국 소식을 종합해 전했다.
후속 취재가 문제였다. 멀리서 취재하자니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전화 10여 통을 돌려 우선 부상자들이 후송된 병원 10 곳을 파악했다. 방송 속보를 모니터하며 여객기 고유번호 같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어뒀다. 다음은 샌프란시스코 행이 문제였다. 이미 예상한대로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 미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다. 활주로가 폐쇄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직항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워싱턴 지국 스탭들과 수소문 끝에 직항 티켓을 구했다. 값은 천정부지였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행은 3년 만이었다. 미국 연수를 마치며 가족들과 자동차로 대륙 횡단에 나섰고, 거의 마지막 기착지가 샌프란시스코였다. 희비가 뒤섞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출장이다. 그것도 사고 취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덜레스 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5시간, 네바다의 황야를 지나고 산맥을 넘으니 샌프란시스코다. 기내 방송은 잇달아 공항이 비상 상황임을 알린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곳이 바로 사고현장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고도를 낮춘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가는 데 갑자기 눈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여객기 착륙인데 그 느낌은 마치 F-18호넷 전투기가 항공모함에 내리는 것과 흡사했다. '아 위험하긴 위험한 곳이구나~'
이곳이 사고 현장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 스위치를 켰다. 촬영 통제를 받을 것이 분명했지만 한번 공항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더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시아나기 사고 이후 항공편이 취소, 연착되면서 공항에서 밤을 지샌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저기 의자에서 잠을 청하고, 무료하게 기다리는 환승객들이다. 공항에는 SBS를 비롯한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SBS LA 지국팀, 그리고 서울에서 급파된 후배 기자들과 함께 현지 사고 취재팀을 꾸렸다. 공항은 전쟁터였다. 방송 중계차들이 즐비하다. 취재진이 몰리니 인터넷이 잘 터질리 없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떠나야 화면을 전송할 정도의 인터넷이 가능하다. 공항내 셔틀 열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저 멀리 추락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접근 금지 구역이었다. 한국의 아침뉴스 준비를 끝내고 나니, 샌프란시스코 공항 구내에서 브리핑이 진행 중이었다. NTSB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데보라 허스먼, 당차 보이는 여성이 또박또박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고 있었다. 도착한지 얼마 안돼 어리둥절한 상황, 감을 잡아야 했다. 왠지 이 여성의 입에 주목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틀리지 않았다. 이 여성은 아시아나 여객기 충돌 사고를 전반적으로 설명하면서 매우 중요한 '팩트'들을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있었다.
충돌 7초 전, 4초 전, 그리고 1.5초 전 사고 직전 상황이 미국 조사 담당자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블랙박스의 음성기록장치를 분석한 것이니 근거가 분명한 설명이었다. 도착 첫날 8시 뉴스는 이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워싱턴에서 날아온 우리팀은 역시 워싱턴의 NTSB 본부에서 날아온 데보라 허스먼을 집중 취재하게 됐다. 다음날 허스먼의 2차 브리핑엔 정신을 좀더 차리고 들어갔다. 사고 조사의 여러 방면에 대해 두루두루 설명하는 가운데, 예상대로 핵심 사안이 포함돼 있었다. 사고기 착륙 전 1600피트 고도에서 1400피트, 500피트, 200피트, 125피트, 그리고 충돌까지 고도별, 시간대별 속력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블랙박스의 비행기록장치를 분석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마치 영어에 익숙치 않더라도 이 말 만은 분명히 알아들으라는 메시지 같았다. 착륙 과정의 책임은 조종석의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이들의 지휘를 받는 승무원들 책임이라고도 했다.
취재는 어느 정도 됐다. 아뿔사! 아침 6시 뉴스 30분 전인데 인터넷이 안 터진다. 인터넷 터지는 데로 나가자. 안 되면 전화 라이브다!
뉴스의 인물, 그리고 다른 주역들
NTSB 위원장 데버라 허스먼의 설명은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3시간 차이가 나는 미국 방송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거나 전화로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 신문들은 착륙 전 조종사들의 임무 수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쪽으로 해석해 1면 톱 헤드라인 뉴스로 이어갔다. 허스먼은 브리핑에서 다른 요인들을 두루 조사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지만, '청자'가 듣는 '화자'의 의도가 엿보였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서 날아온 SBS 취재팀은, 전방위 취재로 사고 진실 규명의 열쇠가 될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낸다. 정보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아시아나기 승무원들의 헌신적인 구조 활동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어서 미국 구조대원들도 기자들 앞에 섰다. 영웅적인 구조담 한 켠에, 사망한 중국 여학생들 중 1명이 구조대 차량에 치여 숨진 것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조사 중이라면서 끝내 고개를 떨군다.
천정부지 호텔 값
비행기 값도 비싼데, 호텔은 바가지다. 60~70달러면 잘 수 있는 허름한 '인(여관)'이 130~140달러.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값이 치솟는다. 좀 낫다는 인은 하룻밤에 300달러 수준이다. NTSB의 브리핑이 열리는 곳이라 수요가 많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재난 현장에서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게 정의로운 것인가? 가격은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실용주의 정신이 지배하는 게 미국이다. 뒤늦게 도착한 한국 취재진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대안이 없으니 어쩔까 고민이다. 첫날 정말 허름한 모텔에 여장을 푼 SBS 워싱턴 지국 취재팀은 이튿날은 그나마 조금 나은 데로 옮겼다. 사실 더 나을 것도 없지만, NTSB 조사단의 거점 호텔과 가까운 게 좋았다. 이제 몇 분 뒤면 허스만 NTSB 위원장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워야 할 시간이다. 또 한 차례 취재 전쟁을 앞두고 잠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