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남북정상회담, 노무현은 비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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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화록 전문 공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담 태도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대화하자고 애걸복걸했다"며 연일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대화록 공개로 "갈등을 협력으로, 전쟁을 평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노고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 대통령을 굴욕적으로 행동했다고 모욕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비굴했던 것일까?

◈ "간곡하게 요청드린다"…비굴? 완곡?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담 내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남북 경협과 평화체제 구축 등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설득했다. 회담 연장을 요청한 쪽도 노 전 대통령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위원장의 결단을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거나 "수시로 보자고만 해주십시오",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 같은 말들이 나왔다.

또 "그 동안 해외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다"라든가 "(우리나라가 미국 등 외국의)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이런 발언들을 근거로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정상적인 양국 정상간 대화가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굴욕감으로 탄식이 절로 나왔다. NLL 포기가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국민을 완전히 배신한 것"이라고도 했다.

사용된 단어로만 보면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에게 매달리는 듯한 발언을 한 게 사실이다. 또 솔직히 정상 간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표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명백한 위협인 동시에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국제무대로 끌고 나오려는 쪽은 남한이다. 이래 저래 형편이 나은 쪽도 역시 남한이다. 뭔가 일을 성사시키려는 쪽이 적극적인 것은 이상할 것은 없다. 기분 상하지 않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완곡한 표현도 나쁠 건 없다. 특히나 같은 민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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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는 해도 '정도'의 문제가 남는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한 법이다. 핵심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는가'이다. 만약 국민 보기에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면 비판받을 일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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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김정일_50

◈ 盧 발언, '할 수 있는 말' 43% VS '북한 편 든 것' 30%

정확히 발언 태도에 관한 설문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여론조사가 하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한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인지에 관한 조사이다. 응답자의 43%는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이라고 답한 반면, 30%는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든 것'이라고 답했다. 의견 유보는 27%였다.

(1. 조사대상 :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2. 표본크기 : 608명 3. 조사방법 : 휴대전화 RDD 조사 4. 조사기간 : 2013년 6월 26일~27일 (2일간) 5. 표본오차 : ±4.0%포인트(95% 신뢰수준) 6. 응답률 : 18% 7. 의뢰기관 : 한국갤럽 자체조사)

☞여론조사 전문보기

저자세 논란과 '북한 편을 든 것'이란 응답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남한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전체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적 자존심을 훼손할 정도였는지는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어땠을까?

또 하나 참고해볼 만한 것이 있다. 바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이다. 당시 회담 당사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다. 1차 회담 대화록까지 공개된 것은 아니어서 자세한 대화내용을 알 수는 없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자서전을 통해 당시 대화 분위기를 엿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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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 위원장은 차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환영 인파가 일제히 꽃을 흔들었다. 함성으로 공항이 떠나갈 듯했다. 검은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오른쪽 뒷자석에 올랐다. 그런 다음 김 위원장은 뒤로 돌아 뒷자석 왼쪽에 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이었다."

(중략)

"그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동양적인 관습에 따라 3년 상을 치렀다. 연장자인 나에게 깍듯했다. 정상 외교 관례를 깨고 공항까지 영접을 나왔다. 차에 동승했고 내가 먼저 탈 때까지 기다리며 세심하게 배려했다. 고별 오찬장에서는 내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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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록대로라면 김정일은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외교적 관례 깨고 장유유서(長幼有序)로 김 전 대통령을 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4년생,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은 1942년생이다. 김 전 대통령이 18살 위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회담 전 대화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는 건 기본이다. 4살 연상인 김 전 위원장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회담의 성과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인지 감안해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세' 논란을 판단할 때 고려해볼 만한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담 태도가 '북한 눈치를 보는 굴욕적인 저자세'였는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회담 전략'이었는지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느 쪽으로 판단하든 사안을 극단적으로 보기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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