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연기도 10년 전 연기 같았나요?"
인터뷰 초반부터 영화의 단점을 지적했더니, 위축됐던 걸까. 펑위옌은 자신의 연기도 아쉬움의 요소가 된 건 아닐까 걱정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영화 '점프 아쉰'과 '청설'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한 대만 배우 펑위옌은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 부드러운 미소로 '대만의 닉쿤'이란 별명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그가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이별계약'의 주인공 자격으로 내한했다.
'이별계약'은 모든 것을 처음으로 함께 경험한 리싱(펑위옌 분)과 차오차오(바이바이허 분) 커플이 5년 간의 계약 기간을 두고 이별하게 되지만, 이후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물. 국내에서 영화 '선물'과 '작업의 정석'을 만든 바 있는 오기환 감독이 대륙으로 넘어가 한국과 중국의 배우, 스태프, 자본, 기술을 결합해 완성한 한중 합작 영화다.
이 작품에서 펑위옌은 5년간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특급 쉐프 리싱 역을 맡아 순애보적인 사랑 연기를 펼쳤다. 영화 전반부까지는 밝고 경쾌한 이미지로 눈길을 끌고, 후반부엔 절절한 감성연기로 여성 관객들의 눈물샘을 훔친다.
"안녕하세요"라고 또렷한 한국어 인사를 전한 뒤 펑위옌은 "2003년도에 한국배우 추자현 씨와 출연한 드라마로 한국에 첫 방문 했었다. 이번에는 내가 출연한 영화로 다시 오게 돼 기쁘다.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펑위옌은 한국-중국, 중국-홍콩, 홍콩-대만 등 자신이 합작 영화와 유독 인연이 깊다며 '합작왕'이라 불러달라는 농을 치기도 했다. 이어 "합작 영화가 언어 소통 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각국의 대표 스태프가 자존심을 걸고 영화에 참여하기 때문에 시너지가 나는 작업"이라고 장점을 전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의 감독과 스태프랑 작업을 해보니 굉장히 섬세한 분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특히 촬영 진행이 굉장히 정확했다. 아무래도 최상의 상태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
'이별계약'은 오기환 감독이 중국판 '선물'을 만들어보자는 취지 아래 시작한 영화였다. 이른바 '한국형 멜로'의 공식을 도입한 작품이다. 전반부는 로맨틱 코미디, 후반부는 최루성 멜로 느낌을 담아내 웃고 울리는 한국 특유의 멜로 영화를 완성해냈다.
지난 4월 중국 전역에 개봉해 이틀 만에 제작비 3,000만 위안(한화 약 54억 원)을 회수하고 현재까지 1억 9천만 위안(한화 약 350억 원)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역대 한중 합작영화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이다. 이는 '한국형 멜로'가 중국 영화 시장에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중국 영화 시장에서는 장점으로 승화될 요소들이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진부한 요소로 다가갈 수도 있을 터.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멜로라는 장르가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어떻게 변환하고 보완해가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별계약'의 이야기 전개가 한국 관객에게 익숙할 수는 있겠지만, 배우로서 연기할 때 '어떻게 하면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잘 대변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연기했다"
펑위옌은 할머니의 영향으로 배우란 직업을 갖게 됐다. 대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 진학을 위해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대만으로 돌아왔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지인인 한 감독을 만나 드라마에 캐스팅 됐다.
"당시 대만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연출하신 감독님이었다. 그분에 의해 연예계에 입문했다. 주윤발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따라 어려서부터 극장에 자주 가긴 했지만, 배우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처음엔 배우 일을 그저 아르바이트 정도 여겼지만, 4~5년 전 계약 문제로 연기활동을 1년간 쉬면서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정말 연기를 하고 싶은가', '그저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다. 이런 자신과의 대화 후에 출연한 영화가 '청설'과 '점프 아쉰'이다. 시련의 시간을 통해 인생에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됐고, 그것을 통해 조금 더 성장했던 것 같다"
펑위옌은 캐나다 유학 시절 한국 드라마에 심취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제일 처음 봤던 한국 드라마로 '가을 동화', 영화로는 '엽기적인 그녀'를 언급했다. 또 박찬욱 감독의 열광적 팬이라며 그의 전작들은 물론이고 최근작 '스토커'까지 봤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연기하고픈 한국 배우로는 '정우성'을 꼽았다. 펑위옌은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한국의 음악 시상식에서 정우성 씨를 처음 만났다"면서 "외모도 멋있었지만, 그런 젠틀맨은 처음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이 세 번째라는 그는 인터뷰 뒤에 이어질 무대 인사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이어지는 한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내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나요?"라며 어리둥절해했다. 기자가 긍정의 답변을 전하자 "그럼 저 오늘 무대인사에서 최고로 멋진 옷을 입고 갈 거에요"라고 신나게 웃어보였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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