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김수현이라는 청춘스타가 가진 가공할만한 티켓 파워를 말이다. 그의 스크린 첫 주연작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가 개봉 5일 만에 전국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 속도를 내고 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진 북한 최정예 스파이들의 달동네 잠입기를 그린 영화로 최종훈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흥행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김수현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작품 자체의 약점이 상당하다. 허술한 전개와 후반부의 지나친 감상주의 등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다. 원작을 옮기는데 집중했을 뿐 영화적인 각색의 묘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10~20대 젊은 관객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인 김수현이 존재했다.
김수현은 이번 영화에서 남파 특수 공작부대 오성조 제3조장에서 남한 최하계층 달동네 바보로 잠입한 '원류환'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광고 속에서 "선배, 오늘 이쁘다. 매일 밤 전화해도 되요?"라는 달콤한 말로 누나들의 마음을 흔들던 그가 스크린 안에서 콧물을 쏟고, 맹구 웃음을 지어댔다. 분명 낯선 모습이었지만, 여성 관객들을 열광했다.
"웹툰을 본 건 캐스팅 논의 단계에서였어요. 처음엔 "이게 그렇게 대단한거야?"하는 마음이었는데 읽어보니 엄청나게 재밌더라고요. 바보 연기에 대한 부담이요? 왜 없었겠어요? 얼굴에 콧물 칠하고, 얼굴을 구기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는 연기를 하면서 '아 이거 잘못하면 광고 떨어지겠는데...' 싶기도 했죠.
그럼에도 이 영화와 이 캐릭터를 선택한 건 '도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현은 "동네 바보 연기와 각 잡힌 엘리트 요원 연기를 동시해 소화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군요. 또 이번 영화를 통해서 손현주, 장광, 박혜숙, 고창석 선배님과 같은 훌륭한 연기자분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라고 말했다.
우선 바보가 되기로 한 김수현은 빠르게 '동구'로 변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보 동구가 되는 것은 '나를 놓는 과정'이었다.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로 분했던 류승룡 선배님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한 연기는 바보연기가 아니라 5살 짜리 어린애의 연기다'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류승룡 선배님이 너무나 뛰어난 연기를 펼치셔서 비교 되면 어쩌냐 무섭기도 했어요. 그러나 용구에겐 용구의 사연이 있고, 동구에겐 동구의 사연이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부담을 떨쳐냈어요"
김수현이 롤모델로 삼은 캐릭터는 뜻밖에도 '텔레토비'였다. 그는 "바보가 사람들 옆에서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면 좀 부담스러울 수 있거든요. 그런데 텔레토비가 옆에 있으면 특유의 행동을 해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잖아요. 동구도 텔레토비처럼 동네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인물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류환'과 '동구'를 연기함에서 더 골머리를 앓았던 쪽은 '류환'이었다. '동구'의 경우 그저 자신을 놓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류환'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많았다.
"조장급 엘리트 요원인 류환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었어요. 몸쓰는 동선도 절도있게 보여야 했기 때문에 연기 외적인 면에서도 보강해야 할 게 많았죠. 근육질 몸매도 만들어야 했고, 북한 사투리도 마스터해야 했죠"
스크린 첫 주연작이라 부담이 컸을 법도 하지만 촬영장에서 김수현은 외롭지 않았다. 그 어떤 파트너들보다 죽이 잘 맞았던 박기웅, 이현우라는 든든한 동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웅이 형과 현우는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남자들끼리 어떤 기 싸움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누가 위 아래일까'하는 일종의 수컷본능 같은 거였죠. 그런데 어느 날 제일 형인 박기웅 씨가 '야, 우리 한번 잘해보자. 형이 잘 할게'라고 막내인 현우한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더라고요. 그것을 계기로 당겨져 있던 어떤 끈이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친해졌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큰형이 얘기하면 동생들이 따라가고, 동생이 지적하면 형이 고치는 식으로 우애를 다져나갔죠"
김수현은 이번 영화에서 이현우와 묘한 애정 관계를 형성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극 중 류환이 해진의 모자를 씌워주는 장면은 2004년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의 우산 신과 버금가는 여성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다 큰 남자 배우들끼리 애정 기류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류환과 해진의 묘한 기류는 원작에서도 있었던 설정이었어요. 처음엔 현장에서 좀 오글거리기도 했는데 나중에 재밌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친한 형-동생처럼 즐기면서 편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니 보람도 있고 좋던데요"
인터뷰 ②에서 계속…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