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진/사회자:
26년 전 바로 오늘이죠. 군사 독재에 대항해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6.10 민주항쟁이 있었는데요.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이한열 군. 서울대 박종철 군. 이 두 청년의 이름은 민주 항쟁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면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아직도 아드님 생각이 많이 나시죠.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네. 많이 납니다.
▷ 한수진/사회자:
만약 살아있었으면 현재 몇 살 되었을까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우리 한열이, 48살 되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었죠.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실 것 같은데요. 가슴 아프시겠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거예요. 우리들의 전부가. 그 때 끝나는 거예요.
▷ 한수진/사회자:
1987년 6월 9일 이었죠. 최루탄을 맞았다. 바로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었다. 이런 소식을 전달받으신 건가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아닙니다. 그렇기 깊이는 상황을 몰랐고요. 우리 한열이가 위독하다고 전화를 받았어요.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없고 묻지도 못하고, 한열이 7일 밤에 갔는데 왜 우리 한열이가 왜 위독하냐고, 그냥 무조건 위독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밤 버스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에 갔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우리 한열이는 그 때 가니까 그냥, 말 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이 되어 있더라고요. 놀랐지요.
▷ 한수진/사회자:
연락은 누구에게 받으셨어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잘 모르겠어요. 당시의 동료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아무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데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던가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누군가 아주머니 아들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맞다. 우리 한열이다. 라고 했죠.
▷ 한수진/사회자: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군요. 한 마디 말씀도 못 건네셨고요. 당시 연세대학교에서 영결식이 거행이 되었고 서울 시내가 완전히 인파로 뒤덮였는데 영결식이 끝날 때 쯤 어머님이 단상에 올라가셨어요. 원래는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고요. 무슨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나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식순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거행하고 있는데 관이 대학교 밖으로 나가려고 하더라고요. 나도 한마디 합시다. 그러니까 마이크를 주었어요. 우리 아들이 못한 것, 우리아들이 이렇게 간 것. 내가 하려 합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우리 아들이 원했던 것은 엄마가 죽을 때까지 하련다. 우리 광주로 가자. 이렇게 하고 말을 맺었어요.
▷ 한수진/사회자:
그리고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계시는 것이군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네. 약속은 큰 겁니다. 내 아들과 했던 약속. 엄마가 열심히 살다가 곁으로 간다. 이런 뜻으로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난해에는 직접 전두환 대통령 사저 앞에 찾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가게 된 계기가 있었고, MBC 이상호 기자라고 있어요. 거기 한 번 가보시라고 했어요. 가보자 그럼. 내가 전두환이를 총으로 쏴서 죽여 버려도 시원치 않을 그런 인간이다. 해서 갔어요. 국민의 혈세를 저렇게 착취해서 감추어놓고 대대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놓고, 저렇게 살면 되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고 옛날에 우리들이 모여서 노래 부를 때 말입니다. 단군 이래 최고 도둑놈 전두환이라고 그 때 당시 노래 불렀어요. 그런 사람이 지금도 매스컴에서 난리입니다.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때 전두환이가 청와대 들어갔을 때 금고에서 지금 현직 대통령 박근혜 씨에게 6억을 주었다고 대선 때 이야기가 나와서 갚는다고 했어요. 대통령 후보는 그 때 국민과 약속했으니 그 돈 반드시 내놓고 내놨다고 국민들에게 발표하고 전두환이 비자금 모아놓은 것들. 국민 앞에 내놔야 합니다. 내놔야 할 것입니다. 가 아니고 내놔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들의 세금이었으니까요.
▷ 한수진/사회자:
지금 또 다시 추징 시효가 돌아와서 10월에 만료된다고 하는데요. 국민적 관심이 높거든요. 어떻게 보세요. 잘 될 것이라 생각됩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시효라는 것은 법적 형식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그래도 법적 시효가 있다고 하니까 그 돈을 정부에서는 시효 안에 추징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국민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머님의 큰 바람이시기도 하고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저는 내일이라도 그런 돈이 해결이 되고 거기에 대한 처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말씀은 여기까지 들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6.10 항쟁에 직접적 물꼬를 튼 사건이었죠. 박종철 열사의 고문 사망 사건이었는데요.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승길 신부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박종철 열사의 사망으로 6.10 민주항쟁에 불이 붙었는데요. 항쟁의 성과 의의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리면요.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잘 아시는 바와 같이 87년도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암울한 상황이었고 어떻게 보면 민주화의 소망이 완전 막히는 듯한, 또 군사독재가 이어서 연장되는가. 이어지는가. 하는 비극적 상황이 있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이것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한국 최고의 권력이 국민을 속이려고 하다가 나중에 허상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었죠. 이런 상황에서 볼 적에 온 국민들로 하여금 6.10 항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저항세력이 불붙게 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적에 한 젊은이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죽음이었지만 엄청난 민주화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결실이라기보다는 물꼬를 트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는 그 의미가 상당히 크지 않나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26돌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것 같아서 안타까운데 어떻게 보세요.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 사람들처럼 역사의식을 망각하는 민족이 없다고 할 정도로 쉽게 잊어버리네요. 아마 그것은 격동기 역사 속에서 하도 엄청난 변화가 많이 나타나니까 거기에 관성이 생겨서 쉽게 잊어버리는 의식들이 있기는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민족이다. 민주다, 통일이다. 더불어 살아간다. 하는 의식이 거의 사라져가면서 물질 중심의 개인주의 사상, 개인주의 실상만 계속 남아 있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박종철 열사의 죽음 같은 것은 민족적 교훈으로 남아야 하는데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요. 그것이 서서히 묻혔다가 계기가 되면 살짝 일어나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것은 언론이나 매스컴. 이 나라의 국민적 여론을 자극시킬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이런 박종철 열사다. 이한열 열사다. 하는 그런 사건을 가끔 비춰주면서 깨우쳐주고 경각심을 주는 것이 민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하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기념사업 중 하나로 2003년부터 박종철 인권 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계신다고요. 어떤 분들에게 상을 드리고 있나요.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작년에는 김진숙 씨에게 드렸고요. 대게 소외된 사람. 인권적인 유린을 당하면서 특별히 공권력이나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있는 단체나 사람들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밀양 송전탑 반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드렸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습니까.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참 요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기자님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원전 문제, 한수원 문제, 4대강 문제. 이것은 우리 국민 전체의 연관된 생명과, 인권보다 더 중요한 생명과 관련한 문제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문제를 야기 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누구냐면 사람이에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전부다 기득권 세력이에요. 기득권 세력은 누구냐. 다 정치권력과 야합 내지 한통속이에요. 어떻게 몇 년 동안인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전에 대해서 국민들이 잘 모르니까 원전 문제 비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방치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문제에요. 정치권에서 이 부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리고 4대강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뇌물 준 리스트까지 나와 있잖아요.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상황은, 있는 놈들. 쉽게 말해 권력이 있는 사람들. 기득권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국민 전체를 생각한다는 희생이다. 봉사한다는 이야기는 아예 땅 속에 집어치워버리고 개인적인 것을 위해서 민족이 어떻게 되던, 미래가, 역사가 어떻게 흐르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제가 한 국민으로서 너무너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계속 언론에서 다루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남북통일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민족 생존권에 관련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워요.
▷ 한수진/사회자:
박종철 열사가 원한 세상은 지금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6?10 민주항쟁 26주년…
우리사회 민주화 큰 획”
▷ 한수진/사회자:
26년 전 바로 오늘이죠. 군사 독재에 대항해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6.10 민주항쟁이 있었는데요.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이한열 군. 서울대 박종철 군. 이 두 청년의 이름은 민주 항쟁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면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아직도 아드님 생각이 많이 나시죠.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네. 많이 납니다.
▷ 한수진/사회자:
만약 살아있었으면 현재 몇 살 되었을까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우리 한열이, 48살 되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었죠.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실 것 같은데요. 가슴 아프시겠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거예요. 우리들의 전부가. 그 때 끝나는 거예요.
▷ 한수진/사회자:
1987년 6월 9일 이었죠. 최루탄을 맞았다. 바로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었다. 이런 소식을 전달받으신 건가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아닙니다. 그렇기 깊이는 상황을 몰랐고요. 우리 한열이가 위독하다고 전화를 받았어요.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없고 묻지도 못하고, 한열이 7일 밤에 갔는데 왜 우리 한열이가 왜 위독하냐고, 그냥 무조건 위독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밤 버스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에 갔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우리 한열이는 그 때 가니까 그냥, 말 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이 되어 있더라고요. 놀랐지요.
▷ 한수진/사회자:
연락은 누구에게 받으셨어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잘 모르겠어요. 당시의 동료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아무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데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던가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누군가 아주머니 아들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맞다. 우리 한열이다. 라고 했죠.
▷ 한수진/사회자: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군요. 한 마디 말씀도 못 건네셨고요. 당시 연세대학교에서 영결식이 거행이 되었고 서울 시내가 완전히 인파로 뒤덮였는데 영결식이 끝날 때 쯤 어머님이 단상에 올라가셨어요. 원래는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고요. 무슨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나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식순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거행하고 있는데 관이 대학교 밖으로 나가려고 하더라고요. 나도 한마디 합시다. 그러니까 마이크를 주었어요. 우리 아들이 못한 것, 우리아들이 이렇게 간 것. 내가 하려 합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우리 아들이 원했던 것은 엄마가 죽을 때까지 하련다. 우리 광주로 가자. 이렇게 하고 말을 맺었어요.
▷ 한수진/사회자:
그리고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계시는 것이군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네. 약속은 큰 겁니다. 내 아들과 했던 약속. 엄마가 열심히 살다가 곁으로 간다. 이런 뜻으로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난해에는 직접 전두환 대통령 사저 앞에 찾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가게 된 계기가 있었고, MBC 이상호 기자라고 있어요. 거기 한 번 가보시라고 했어요. 가보자 그럼. 내가 전두환이를 총으로 쏴서 죽여 버려도 시원치 않을 그런 인간이다. 해서 갔어요. 국민의 혈세를 저렇게 착취해서 감추어놓고 대대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놓고, 저렇게 살면 되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고 옛날에 우리들이 모여서 노래 부를 때 말입니다. 단군 이래 최고 도둑놈 전두환이라고 그 때 당시 노래 불렀어요. 그런 사람이 지금도 매스컴에서 난리입니다.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때 전두환이가 청와대 들어갔을 때 금고에서 지금 현직 대통령 박근혜 씨에게 6억을 주었다고 대선 때 이야기가 나와서 갚는다고 했어요. 대통령 후보는 그 때 국민과 약속했으니 그 돈 반드시 내놓고 내놨다고 국민들에게 발표하고 전두환이 비자금 모아놓은 것들. 국민 앞에 내놔야 합니다. 내놔야 할 것입니다. 가 아니고 내놔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들의 세금이었으니까요.
▷ 한수진/사회자:
지금 또 다시 추징 시효가 돌아와서 10월에 만료된다고 하는데요. 국민적 관심이 높거든요. 어떻게 보세요. 잘 될 것이라 생각됩니까.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시효라는 것은 법적 형식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그래도 법적 시효가 있다고 하니까 그 돈을 정부에서는 시효 안에 추징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국민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머님의 큰 바람이시기도 하고요.
▶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 <이한열 열사 모친>:
저는 내일이라도 그런 돈이 해결이 되고 거기에 대한 처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말씀은 여기까지 들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6.10 항쟁에 직접적 물꼬를 튼 사건이었죠. 박종철 열사의 고문 사망 사건이었는데요.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승길 신부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박종철 열사의 사망으로 6.10 민주항쟁에 불이 붙었는데요. 항쟁의 성과 의의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리면요.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잘 아시는 바와 같이 87년도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암울한 상황이었고 어떻게 보면 민주화의 소망이 완전 막히는 듯한, 또 군사독재가 이어서 연장되는가. 이어지는가. 하는 비극적 상황이 있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이것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한국 최고의 권력이 국민을 속이려고 하다가 나중에 허상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었죠. 이런 상황에서 볼 적에 온 국민들로 하여금 6.10 항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저항세력이 불붙게 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적에 한 젊은이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죽음이었지만 엄청난 민주화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결실이라기보다는 물꼬를 트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는 그 의미가 상당히 크지 않나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26돌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것 같아서 안타까운데 어떻게 보세요.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 사람들처럼 역사의식을 망각하는 민족이 없다고 할 정도로 쉽게 잊어버리네요. 아마 그것은 격동기 역사 속에서 하도 엄청난 변화가 많이 나타나니까 거기에 관성이 생겨서 쉽게 잊어버리는 의식들이 있기는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민족이다. 민주다, 통일이다. 더불어 살아간다. 하는 의식이 거의 사라져가면서 물질 중심의 개인주의 사상, 개인주의 실상만 계속 남아 있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박종철 열사의 죽음 같은 것은 민족적 교훈으로 남아야 하는데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요. 그것이 서서히 묻혔다가 계기가 되면 살짝 일어나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것은 언론이나 매스컴. 이 나라의 국민적 여론을 자극시킬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이런 박종철 열사다. 이한열 열사다. 하는 그런 사건을 가끔 비춰주면서 깨우쳐주고 경각심을 주는 것이 민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하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기념사업 중 하나로 2003년부터 박종철 인권 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계신다고요. 어떤 분들에게 상을 드리고 있나요.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작년에는 김진숙 씨에게 드렸고요. 대게 소외된 사람. 인권적인 유린을 당하면서 특별히 공권력이나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있는 단체나 사람들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밀양 송전탑 반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드렸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습니까.
▶ 안승길 신부 /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참 요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기자님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원전 문제, 한수원 문제, 4대강 문제. 이것은 우리 국민 전체의 연관된 생명과, 인권보다 더 중요한 생명과 관련한 문제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문제를 야기 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누구냐면 사람이에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전부다 기득권 세력이에요. 기득권 세력은 누구냐. 다 정치권력과 야합 내지 한통속이에요. 어떻게 몇 년 동안인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전에 대해서 국민들이 잘 모르니까 원전 문제 비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방치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문제에요. 정치권에서 이 부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리고 4대강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뇌물 준 리스트까지 나와 있잖아요.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상황은, 있는 놈들. 쉽게 말해 권력이 있는 사람들. 기득권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국민 전체를 생각한다는 희생이다. 봉사한다는 이야기는 아예 땅 속에 집어치워버리고 개인적인 것을 위해서 민족이 어떻게 되던, 미래가, 역사가 어떻게 흐르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제가 한 국민으로서 너무너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계속 언론에서 다루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남북통일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민족 생존권에 관련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워요.
▷ 한수진/사회자:
박종철 열사가 원한 세상은 지금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승길 신부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