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부터 2012년까지 군에 입대한 아들 가운데 매년 평균 150명이 시신이 돼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난 해에도 140여명이 군에서 사망해 부모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군에서 사흘에 한 명 꼴로 소중한 아들이 죽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아이들을 적게 낳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외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군은 부대 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개인 문제에 따른 자살로 처리합니다. 실제로 앞서 인용한 사망 사건의 80% 가까이는 개인적 이유에 따른 자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를 통해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고 ‘인증’을 받은 아들이 군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면 부모들이 그 죽음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개인적 이유로 돌리며 “심신이 나약했다” “가정 환경이 불우했다” “여자 문제로 고민했다” 등을 자살 동기로 제시하면 납득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군 수사결과까지 의문점이 있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군은 슬픔에 빠진 부모들에게 사흘 안에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인도해 갈 것을 요구합니다. 의문점이 남은 군 수사에 대한 유족의 항의는 귀담아 듣지 않는 편입니다. 유족들이 소중한 아들의 시신 인도를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시신 인도를 거부한 채 아들 죽음에 관한 진실을 찾으려는 유족들이 늘면서 현재 군 병원 냉동실에 보관된 군인의 시신만 23구, 화장은 했지만 유족이 반발하며 받기를 거부해 창고에 보관된 유골만 149기로 추정됩니다.
일부 군 관계자들은 유족이 보상 때문에 떼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취재 중 만난 유족들은 누구보다 싸늘한 냉동실에 아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고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몇 푼의 보상을 기대하기 보다는 아들의 죽음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군 복무에 따른 것임을 인정받아 죽은 아들의 명예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자살을 했다는 데 동기가 불분명하고 유서나 목격자 등도 없는데다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은 이 의문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미 육군은 군에 입대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규정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군대 내 자살의 경우 군의 직무와 자살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서처럼 직무연관성이 없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 책임은 군 당국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일단 군대 내 사망사고의 경우 순직인정을 하고 개인적 사유라는 명확한 증거를 찾았을 경우 제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모병제 국가이면서 군대 내에 군인들의 복무환경 개선과 인권 침해를 막을 각종 부서와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고 있는데도 이렇게 군인의 죽음을 예우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경우도 군대 내 자해사망자를 질병으로 사망한 것과 같이 인정해 보상을 합니다. 다만 살인을 한 뒤 자살한 사람은 보상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군 업무와 관련 없는 자살도 퇴직연금에 해당하는 연금을 지급하고 있고 독일은 정신적 장애에 따른 자살의 경우도 원호 연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건강한 청년이라면 헌법에 부여된 의무로 군에 가야 하는 대한민국 군은 개인적 이유로 자살했다고 군 수사에서 결론내면, 군에서는 누구도 아무 것도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적 이유가 아니라 가혹행위나 과도한 업무 등 군 복무와 관련 있다는 반대 증거를 찾아내야 할 책임은 유가족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유족들이 초기에 군 조사를 믿고 기다리게 될 경우 초동 단계에서 중요할 수 있는 진술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군이 이미 같은 부대원들의 진술을 맞춰 놓거나 현장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유족이 군 수사기록을 포함해 모든 기록을 요구해도 유족에게 기록을 얼마나 공개할 지 여부를 군에서 결정하다 보니까 기록에 대한 접근이 번번이 막힐 때가 많습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군 수사결과와 다른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유족들은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소송을 위한 변호사 선임비용을 빼고도 그나마 공개되는 기록을 복사하는데 많게는 수 백만 원의 비용이 듭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유족들은 돈 때문에 억울해도 진실을 찾는 싸움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타살이 의심되는 죽음이라면 진실을 찾기 위한 길은 훨씬 더 길고 힘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쪽에서는 군에 간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국적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거나 이중 국적자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병역 의무 대상자에서 빠져 나간 숫자가 1만6천981명이나 됩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3급 부이사관 이상 고위공직자 직계비속이 국적포기에 의해 병역면제를 받은 숫자만 33명이나 됩니다.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과연 누가 훼손시키고 있는 지 고민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대법원에서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군에서 자살을 했다고 하더라고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이 가혹행위 등 군대 내 문제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 나오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난 해 국방부에서도 훈령을 개정해 유족이 자살을 인정할 경우 순직을 해 줄 수도 있도록 훈령을 개정했지만 실제 적용은 굉장히 자의적이라는 것이 유가족들의 설명입니다. 특히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이 있는데도 이걸 무시하고 유족들이 자살로 인정하도록 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군복을 입은 청년들의 죽음을 국가가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19대 국회에서 주목할 만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 추진해서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 개정안은 의무복무를 하는 군인의 사망에 대해선 일단 순직인정을 해 주고 명확한 반대증거는 미군처럼 군이 찾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아직 조항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이런 내용을 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새 정부 장·차관급 공직자 중 14명이 근시, 선천성 운동 장애 등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고, 여성을 제외한 19대 국회의원 255명 가운데 47명도 병역을 면제 받았습니다. 나라를 지키러 군대에 가는 것이 힘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의 자식들만 간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식시키고 국가가 군에 간 소중한 아들들을 제대로 예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도록 하는 정치권과 군의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