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63)이 가요차트에서 1위를 한 건 1991년 '꿈'이 마지막이었다. '꿈'으로 여러 개의 상을 받은 후 그는 방송 은퇴를 선언하고 공연 무대로 돌아갔다.
22년이 흘러 17일 오후 주요 음원차트 1위에 조용필의 이름 석자가 올랐다.
그가 10년 만에 발표하는 앨범인 19집의 수록곡 '바운스'(Bounce)가 엠넷, 벅스, 소리바다, 올레뮤직,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등 8개 음원차트 정상을 휩쓴 것이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싸이의 신곡 '젠틀맨'은 2위로 밀려났다. 아이돌 스타 누구도 막지 못한 싸이의 독주를 '왕년 스타' 조용필이 막고 나선 것이다.
이날 '오빠의 금의환향'에 가요계와 온라인 공간이 종일 뜨거웠다.
트위터에는 아이돌 가수부터 중견 작곡가까지 후배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10년 만에 돌아온 본좌"(2AM의 창민), "가왕의 귀환"(허각), "진정한 월드 클래스 뮤지션"(주석), "군더더기 없는 명불허전"(작곡가 김형석)….
세대를 뛰어넘어 네티즌의 반가움도 넘쳐났다. "컬처 쇼크", "유일한 꼰대 아닌 레전드 뮤지션", "한국의 필 콜린스", "나이를 잊은 가왕"….
본인이 직접 들으면 민망할 정도의 존경과 찬사다. 조용필은 이처럼 뜨거운 호응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했다.
"조금 전 대표님(조용필)을 만났는데 '새삼스럽게 기분이 좋기보다 앨범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프로듀서와 연주자들의 공이 헛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어요. 관심을 가져 준 언론에도 감사하다고 하셨고요."(YPC프로덕션 조재성 실장)
'바운스'는 많은 대중이 흥겹게 즐길 수 있는 팝 록이다. 노랫말에는 연인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설렘이 녹아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 씨는 "1980년대 AOR(어덜트 오리엔티드 록)에 가까워 새로울 건 없지만 낡은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며 "가장 잘 하는 걸 하면서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은 점, 실험적인 건 없지만 낡은 음악의 재탕이 아니라는 점이 바로 거장의 공력이다"라고 평가했다.
작곡가 황세준 씨는 "많은 유혹이 있으셨을텐데 뻔하게 안 가면서도 좋은 멜로디를 선보였다"며 "대중과 뮤지션을 모두 만족시키는 음악이 무척 어렵다는 걸 알기에 놀라웠다. '음원차트에선 이런 곡이 1등할 것'이란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줬다. 창작하는 입장에서 반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LP와 CD 시대를 거친 조용필의 첫 음원차트 석권은 가요계에 여러 의미를 시사한다.
영미 팝 시장에선 데이비드 보위, 본 조비, 산타나 등 거장들의 명반에 음악 팬들이 여전히 뜨겁게 반응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너무도 낯선 풍경이기 때문이다.
조용필 앞에는 늘 '레전드'란 수식어가 붙어 화제가 되지만 10-20대가 활동하는 음원차트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얻은 건 분명 이례적이다. 일부에선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SNS 등에 신곡 감상 후기를 올리며 음원차트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러나 박은석 씨는 "아이돌에 한정된 주류 음악계에서 비중있는 뮤지션의 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 곁눈질 하지 않고 환갑이 넘도록 창작 활동에 정진한 데 대한 존경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는 "환갑이 넘는 나이에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포용력이 충격적이었다"며 "음원차트 1위로 바로 진입하는 아이돌 스타들과 달리 '바운스'는 차트에서 단계적으로 순위가 상승했다. 결국 우리가 음악을 시작하도록 이끌어준 분이 '음악 시장은 결국 음악'이라고 깨닫게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