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끼'라고 불리는 선천적 재능을 타고난 배우가 있는가 하면 노력으로 재능을 뛰어넘는 배우도 있다. '타고난 배우'와 '노력형 배우'로 분류하자면 배우 김수현(29)은 노력형 배우에 가깝다. 김수현은 드라마에서 주로 완벽한 커리어우먼이나 치명적 매력의 팜므파탈을 그렸으나, 하나같이 김수현의 실제 성격과는 간극이 매우 큰 배역이었다.
김수현은 그런 틈새를 노력과 열정으로 채웠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당시 김수현은 연예인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생이었다. 2005년 참가한 슈퍼모델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뒤 김수현은 주연배우로 발탁돼 자연스럽게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드라마 ‘브레인’, ‘도망자 플랜비’, 최근 종영한 ‘7급공무원’까지 무게감 있는 배역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그 흔한 연기력 논란의 도마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연기 8년 차. 김수현은 '7급공무원'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비운의 여인, 미래를 그렸다. 미래가 처참한 가족사를 가진 인물인만큼 김수현은 악역이었다. 김수현은 "평소 키우던 강아지가 눈 앞에서 죽는다는 상상만 해도 처절한데 가족이 몰살 당하는 미래의 슬픔은 감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미래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너무나 괴로워서 빨리 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직접 요리한 음식을 살뜰하게 나누게 삶의 낙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많은 김수현이었지만 미래를 표현할 때만큼은 냉철한 킬러가 되려고 노력했다. 여기엔 김수현다운 노력도 있었다. ‘목검’(木劒) 수련이 바로 그것. 김수현은 촬영장에 목검을 가지고 다니면서 카메라가 켜지기 직전까지 휘둘렀다. 여배우와 목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탄생한 이유는 뭘까.
"'7급공무원'의 대부분의 배역들이 가벼운 질감이라면 미래라는 인물을 무겁게 그리고 싶었어요. 색깔로 치자면 노란색, 초록색 등이 그려진 그림에 빨간색 물감을 확 긋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미래처럼 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목검을 휘두르며 기를 모았어요. ‘악’하고 기합도 질렀고요. 덕분에 미래가 더 단단하고 강하게 표현됐어요."
'7급공무원' 촬영에서 김수현은 신인배우 임윤호(JJ 역)와 함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미래와 JJ는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첫 연기에 도전한 임윤호는 현실에서도 김수현과 임윤호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해외파 출신이며, 연기 외적으로 훌륭한 재능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연기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게 많지만 열정만큼은 뜨거운 임윤호를 볼 때면 김수현도 자신의 신인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저 역시 처음 연기를 할 때 윤호씨와 비슷했어요. 첫 촬영에서 전화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수화기를 들고 '저 어디 봐야 돼요? 뭐라고 해야 돼요?'라고 물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윤호 씨가 많이 외롭고 많이 무서웠을 거예요. 그런데도 조용하고 묵묵하게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참 멋지더라고요. 윤호가 매 장면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많은 걸 느꼈어요."
미래가 시청자들에게 강한 공감대를 이뤄내긴 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7급공무원’이 로맨스와 첩보가 동시에 나오다보니, 주원과 최강희의 로맨스가 강조되는 시점부터 미래의 복수극이 느슨해졌다. 김수현의 러브라인이 그려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김수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미래의 멜로가 나왔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만약 미래가 길로(주원 분)에게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유혹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길로와 서원(최강희 분)의 러브라인 역시 보다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하고요. 드라마 속 갈등은 늘 첨예하고 그 가운데는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미래는 거기에 있지 못했다는 게 아쉬워요.”
‘7급공무원’을 통해 김수현이 얻은 것은 “연기는 할수록 어렵다.”는 깨달음이었다. 연기를 알면 알수록, 더 잘하려면 잘할수록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하기 때문. 그런 면에 있어서 김수현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배우는 기네스 펠트로다. 꾸밈없는 멋스러움과 존재만으로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에 부단한 노력이 있었음을 김수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올해 서른이 됐는데 정말 이렇게 설렘과 기대가 많을지. 굉장히 한류가 있을 줄이야. 한국이 굉장히 한류라는 게 이렇게까지 위력이 있을 줄이야. 제가 가진 모든 탈렌트를 살려서. 올해가 되게 기대가 된다. 연기를 알아가는 게 재밌고. 더 다양한 역할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스탠바이 못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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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