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조국, 이념보다 가족"…'가족의 나라'의 깊은 울림(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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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는 이 어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국을 믿는 것뿐입니다"

25년 만에 돌아온 아들, 그것도 머릿속에 종양을 품고 온 아들을 본 엄마의 마음은 사무친다. 당장 아들의 머리를 열어 종양을 떼버리고 싶지만, 가족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세 달. 그곳으로 돌아가 재활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술을 섣불리 결정하지도 못한다. 이 가족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분단, 조국, 이념과 같은 단어는 전후 세대인 우리에겐 너무나 낯설고 버겁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를 살고 있지만,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이같은 단어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영화 '가족의 나라'는 재일교포 2세 출신의 양영희 감독이 가족사를 다룬 지극히 개인적 기록이다. 북송사업(1959년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아 20년간 재일본조선인연합회계(조총련) 재일교포들이 북한에 송환된 일)에 대한 언급은 영화 시작 전 자막으로만 간략히 전할 뿐 사회고발적 메시지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대한민국의 관객이라면 누구나 막막하고 먹먹한 감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비극의 역사이며, 앞으로도 이어질 절망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디어 평양'을 통해 조총련계 간부였던 아버지를, 2009년 '굿바이 평양'을 통해 북한에 사는 세 오빠와 조카들을 담았던 양영희 감독이 2012년 '가족의 나라'를 통해 제2의 조국 일본에서 25년 만에 만난 오빠와의 특별한 며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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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애(안도 사쿠라 분)는 25년 전 북으로 떠났던 오빠 성호(이우라 아라타 분)가 뇌종양 치료차 오게 됐다는 소식에 들떠있다. 조총련계 간부인 아버지와 찻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역시 아들을 볼 설렘을 숨기지 못한다.

성호는 양동지(양익준 분)라는 감시자를 동행하고 집으로 향한다. 16살 무렵 마지막으로 걸었던 익숙한 동네 앞에 다다르자 차에서 내려 땅을 밟는다. 그리고 발길의 끝에서 눈물을 머금고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와 해후한다.

25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이들은 시간의 힘보다 강한 핏줄로 엮여있는 가족이었다. 성호는 그 어떤 것도 가족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지만, 가족 안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리애와 부모님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어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 작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직면하게 된다.

양영희 감독의 세 오빠는 실제로 북송 사업이 한창이던 1960년대 편도 티켓만을 손에 쥔 채 북한으로 떠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이 영화는 1999년 양 감독의 셋째 오빠가 병에 걸려 일본으로 잠시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감독은 리애네 가족 구성원 한명 한명의 눈이 돼 3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감시자 양동지의 시선도 함께 담았다. 이들이 함께 한 시간안에서 서로 다름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소속된 나라가 달라도 이들은 분명 가족이기 때문이다.

성호는 여행 가방을 고르면서 동생 리애에게 "넌 이 가방을 끌고 여러 나라를 맘껏 돌아다니라"고 말한다. 또 자신이 사는 그곳을 "생각은 않고 따르기만 하는 나라"라고 표현하면서 "너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살라"고 충고한다. 아직 애어른인 리애는 이 말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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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된 리애는 거부할 수 없는 그곳의 명령 앞에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 스스로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고, 아들을 기꺼이 보낸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리애는 시종일관 가족을 감시하는 양동지에게 "따라다니지 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오빠가 아니라 나에게 해!"라고 소리 지른다. 가족의 비극을 지켜보는 사명감 강한 감시자는 "동생분이 싫어하는 그 나라에서 오빠도 저도 같이 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겁니다"라고 차갑게 말한다.

거창하게 분단국가의 비극을 논할 필요도 없다. 관객은 한 가족이 직면한 비극과 절망을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이 비극이 비단 이들만의 것도 아니며,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가슴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이자 깊은 울림이다.

'가족의 나라'는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일본 영화 전문지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최고의 영화' 1위에 올랐다. 감독의 분신처럼 연기한 리애 역의 안도 사쿠라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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