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불장난이 빚어낸 참극

포항 산불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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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어선 화재 사망 사고 취재를 하다 포항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한반도를 가로질렀습니다. 군산에서 대전, 대전에서 다시 포항까지,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저의 마음을 안 회사 운전기사분이 속도를 내주신 덕분에 초행길인데도 3시간 반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포항에 닿은 시각은 새벽 1시 무렵, 먼저 상황실이 차려진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포항에 가는 동안 상상했던 광경은 도심 곳곳에 아직도 뻘건 불길이 남아있다든지, 연기가 자욱하다든지 그런 상황이었지만 산불 발생 뒤 거의 10시간이 지난데다 어둠 속이라서 언뜻 보기에는 평온해보였습니다. 오히려 상황실이 차려진 대흥초등학교 운동장 안에 소방차량이 가득한 걸 보고 나서야 산불이 났구나 하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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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에서 설명을 들으니 큰 불길은 잡혔기 때문에 현재는 시내 곳곳에서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침 뉴스에 담기 위해 잔불 정리 현장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곳에서는 이미 다 정리하고 나오는 소방관분들과 마주쳤을 뿐 불 끄는 장면은 취재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피해 상황 등을 촬영하고 나니 이미 3시가 넘었습니다. 아침 뉴스를 준비하고 일단은 근처 모텔을 찾아가 짐을 풀었습니다.

1시간 정도 잠깐 눈을 붙인 뒤 일어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밤사이 산불이 다시 살아나거나 번지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황실이 있는 대흥초등학교로 돌아가 7시 뉴스 중계를 하려고 했는데 중계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황실로 이동하는 길에 불이 다시 살아난 지역을 봤다며 그리로 중계차를 이동하자는 것이었죠. 어제부터 7백 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운전하느라 녹초가 된 기사분은 쉬게 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고 중계차가 이동한 지역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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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중계차가 있던 자리에서 바로 보이는 저 지점입니다. 불길이 확 번지면 아래 주택까지 금세 위험해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용흥동 현대 2차 아파트 근처, 바로 주택이 있는 뒷쪽 산에서 불길이 다시 살아나 활활 타고 있었고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면서 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뉴스 시작까지는 앞으로 15분,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불이 더 번지지 않게 빨리 진화해야지.. 하는 당연한 생각과, 뉴스 중계를 할 때까지는 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생각.  뉴스가 시작되기 5분 전쯤에 불길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방송 화면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만  나갔습니다. 당연한 생각대로 됐으니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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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취재에 나섰습니다. 바람이 다소 불기는 했지만 어제만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불씨가 살아나는 지역은 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해 지역 위주로 다니기로 했습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최초 발화지점이라고 하는 용흥동 용흥초등학교 뒷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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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진화 작업에 투입됐던 해병대원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이번 산불이 시작된 건 한 중학생의 불장난에서라는 게 경찰의 수사 결과였습니다. 이 학생은 친구들과 놀다가 1회용 라이터로 나뭇잎에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불이 확 번져갔습니다. 포항을 비롯한 주변 지역엔 계속 가물어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낙엽은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마침 초속 12미터, 13미터의 강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강풍을 타고 불씨는 크게 점프해서 옮겨 붙습니다. 다른 도시도 비슷하지만 포항 북부는 시내 곳곳에 작은 야산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로 불은 계속 확산돼 갔습니다.

다음 약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우현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산자락에 위치한 이 집에는 79살 안 모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이 노인은 산불이 확 번지자 미처 대피하지 못해 사망했습니다. 이번 산불로 포항에서 숨진 1명이 이 분이었습니다. 이외에도 27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부상 당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타고 다녔을 스쿠터까지도 까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다니다보니 화마의 피해를 본 주민들이 집을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용흥동 우미골이라는 마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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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서만 10채의 집이 피해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아예 전소된 집들이 많았습니다.

한 주민은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됐는데 소방차가 너무 늦게 왔다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갈퀴를 들고 계시던 그 분은 집안을 두루두루 보여주시면서 옷이며 가재도구, 아이 교과서 등 건질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시 40분쯤에 신고했는데 소방차는 3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며 이게 말이 되냐는 말씀이었습니다. 1시간만 빨리 왔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마을을 나와 돌아다니다보니 이번엔 창고 비슷한 건물이 전소된 게 보였습니다. 역시 가족분들이 모여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저를 붙잡고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번 포항 산불로 1명 사망, 27명 부상, 이재민 109명 발생, 건물 90여 채 피해, 임야 5헥타르 피해,

이렇게 숫자로만 나열하면 건조합니다. 그동안 접했던 여러 재난 피해와 비교하면 숫자만으로만 볼 때는 아주 큰 피해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돕니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서 참상을 보면 다르다는 걸 새삼 또 느낍니다. 인명 피해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 이라는 표현도 함부로 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사 기자가 취재해서 보도하는 게 직접적인 도움이 안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아시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반기면서 고개 숙여 잘 보도해달라고 하시는 모습에서는 너무나 민망했습니다. 몇장 사진 찍는 것도 죄송했던 건 이런 재해 재난 피해 현장 취재를 다니면 늘 들었던 생각인데 오랜만에 다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렇게 잠깐 취재를 마치고 다시 본거지로 복귀했습니다. 20년 만에 닥친 산불이라는데 그 끔찍한 기억은 20년은 족히 남겠지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 불장난이 시작됐던 그 지점을 취재하고 있을 때 근처에 사는 아이들인지 초등학생 3명이 구경 왔습니다. 저희를 보고는 "아저씨 ,저희 찍어주세요" 하며 역시 철없이 조르고 있는데 지나가던 소방관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저기서 불장난해서 산불 난 거 아니?"

"네~"

"산불 얼마나 무서운지 너희도 알았지? 절대로 그런 불장난하면 안된다."

"네~"

산불 취재 다니면서 유일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던 단 한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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