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을 만나기 전, 까다롭고 자기 색이 너무나 뚜렷해 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괜히 들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난 후 ‘참 결이 고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전해졌다.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서 그토록 위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음악을 만드는 것이 루시드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1월 소설집 ‘무국적 요리’를 발표한 루시드폴은 이제 음악으로 다시 가슴을 적신다. 2011년 12월, 5집 ‘아름다운 날들’을 발표한 루시드폴은 지난 1년여 간 잠시 음악에 쉼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냥 한가했던 것만은 아니다. 올해 초 소설집을 발간했으니 돌아보면 스스로에게 이처럼 의미 있는 휴식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책을 쓸 때는 어디에서 쓰는지, 특별한 작업 공간이 있는지 쉴 새 없이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좋았다. 정신없이 살다가 여유 있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동안 책을 썼다.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 지난 해 3월에 이사를 해서 거의 집에서 작업하고 글 쓰고 그랬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루시드폴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갈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히키코모리를 떠올리면 안 된다.(웃음) 그래서 사실은 좀 공간이 중요한 편이다. 이사한 곳이 한옥인데 문 다 열어 놓고 지내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음악 외에 다른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다는 루시드폴은 요즘 여러 가지의 연주 음악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국악일 수도 있고 일렉트로닉, 월드뮤직에도 관심이 간다. 미니멀한 음악들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고수들이 비우는 게 더 어렵다고 하는데 그런 음악들을 들으며 다시금 그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이들은 루시드폴 음악에 대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루하다, 잠 온다, 심지어는 노래가 다 한곡 같다 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다.(웃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음역이나 잘하는 것이 의외로 잘 안 바뀐다. 예를 들면 어느 날 갑자기 아이돌을 위해서 곡을 쓴다던지 댄스곡을 쓴다던지 R&B를 쓴다던지 할 수 있겠지만 잘 할 것 같지는 않다. 음악이라는 큰 틀에서 이만큼의 영역, 그 만큼의 것들로 음악을 해오고 있는 편인데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발전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는 건 아닌데 듣는 사람의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 하는 거다. 대중들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얼마나 더 많이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느냐가 대중성일 텐데 나는 어느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이들이 자신의 정서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 되고 나는 내 음악에서 자신들만의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분들에게 들려줄 수 있으면 되지 아닐까 싶다.”
루시드폴은 꾸준히 이야기집을 내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표한 것은 말 그대로 단편 소설집인데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집을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나 같은 경우는 소설집을 내야겠다고 해서 낸 게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들이 다 다르고 아예 처음에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내용이라 기본적인 형식도 다 다르다. 그런 이야기들이 한데 묶여 있다는 점이 분명 소설책인데 앨범을 만드는 기분이 들게 한다.”
루시드폴과 이야기를 하며 스위스 로잔 공대 박사학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논문을 게재 했다는 가수로서는 독특한 이 이력이 떠올랐다. 학업을 중단하고 음악에 전념하겠다고 했을 때 ‘아니 왜, 그 화려한 이력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2009년 2월 한국에 돌아왔는데 처음에는 다시 스위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전쟁처럼 살았기 때문에 추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 때 친구들이 보고 싶더라. SNS를 통해 그곳에서 만난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면 그 때 실험실에서 공부했던 시간, 그들과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그렇게 큰 결심을 했느냐고, 후회는 없느냐고 하자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결정하는 편이다. 그렇게 결정할 때 포인트는 한가지인데 시간이 지나면 후회 할 것 같니, 안 할 것 같니를 묻는 것이다. 언젠가 후회되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딱히 그런 것이 없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드폴은 생명이 시작되는 봄,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그 시작은 바로 4월 2일부터 28일까지 월요일을 빼고 주 6회, 총 24회 열리는 콘서트 ‘목소리와 기타’다. 셋 리스트도 계속 바뀌고 짜여진 동선도 없는 이 콘서트에서는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모습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공연 장소인 반쥴은 70석 규모의 작은 공간이다. 유리창도 있고 객석의 의자 하나하나도 다르다. 그 창으로 해가 지는 것도 볼 수 있다. 공연장 근처에 삼청동도 있고 서점도 있고 다 있다. 공연장 오는 장소를 확장시키고 싶었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공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을 지난해부터 찾아다녔다. 여러 번 가서 답사를 하고 곡 구상도 하고 그랬다. 어떤 날은 노래가 메인이 되고 또 어떤 날은 건반 치는 친구가 메인이 되기도 하면서, 셋 리스트는 계속 바뀌는, 지루하지 않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
콘서트가 열리려면 아직도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이렇게 기다려지기는 오랜만이다. 콘서트를 만나는 그 시간,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루시드폴. 그의 과감한 결단이 다행인 순간이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