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최고훈장, 국민에겐 안 주는 나라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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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12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 영예수여안을 심의ㆍ의결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은 임기말 지지율 20%대 대통령이 자신에게 훈장을 셀프(Self) 수여했며 일제히 비난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 대통령 비판에만 매몰된 나머지 정작 무궁화대훈장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간과했다.

◈ 우리나라 최고훈장 '무궁화대훈장'

훈장의 사전적 의미는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이다. 우리나라 훈장은 국가와 산업, 국방, 과학기술, 문화, 체육 등 분야별로 11가지가 있으며 그 공적의 정도에 따라 1등급에서 5등급까지 5단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건국과 국가 기초를 공고히하는 데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는 건국훈장이 수여되는데 이 건국훈장은 다시 5개 등급으로 세분된다. (1등급 대한민국장, 2등급 대통령장, 3등급 독립장, 4등급 애국장, 5등급 애족장)

하지만 이 11개 분야별 1등급 훈장 위에 또 하나의 훈장이 있다. 바로 우리 나라 최고 훈장은 무궁화대훈장이다. 무궁화대훈장은 분야별 훈장들과 달리 등급분류도 없다. 상훈법은 이 무궁화대훈장을 우리나라 최고훈장으로 명시하고 수여 대상까지 적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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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조(무궁화대훈장)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의 최고 훈장으로서 대통령에게 수여하며, 대통령의 배우자,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 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前職)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도 수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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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거나 부인이거나

위 조항에서 보듯 상훈법은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과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불거진 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여 논란은 애초부터 무의미한 논쟁이다. 법에 주도록 규정해놓고 받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물론 그 법을 만든 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최고훈장을 주도록 한 것 자체가 꼭 문제는 아니다. 외국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 크루아(La Legion d’honneur / Grand-Croix )를 신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수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최고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의 수여 대상자를 대통령과 그 배우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 나라 국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그 어떤 희생과 공로를 쌓아도 최고 훈장은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오직 선거판에서 이겨 대통령이 되거나 그의 배우자가 되어야만 무궁화대훈장을 받을 수 있다.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공적은 '대통령에 당선되거나 그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무궁화대훈장 '제작비 5,000만원'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 최고훈장답게 제작비도 엄청나다. 금과 은, 루비, 자수정, 비단 등을 이용해 제작되는데 금만 190돈, 그러니까 0.7㎏이 들어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대통령용이 5,000만원, 배우자용이 3,500만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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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김좌진 장군 등이 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109만원, 김수환 추기경이 받은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이 62만원 정도니까 제작비만 놓고 보자면 무궁화대훈장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46배, 국민훈장 무궁화장의 81배나 되는 셈이다.

돈 갖고 따질 일은 아니겠지만 과연 안중근 의사나 김좌진 장군, 김수환 추기경 등이 우리나라에 세운 업적과 공로가 역대 대통령들보다 못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 최고훈장, 공로에 따라 수여돼야

앞서 언급했듯이 훈장은 국가를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이다. 그렇다면 공을 세운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왕과 귀족이 남아 있는 영국에서조차 최고훈작인 대십자훈장(Knight·Dame Grand Cross)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기준은 어디까지나 업적과 공로다.

대통령에게 최고 훈장을 줄지 말지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결정하면 될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된 셀프 수여 문제도 프랑스처럼 취임과 동시에 전임자가 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최고훈장을 대통령과 그 배우자에게만 주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우방 원수와 그 배우자는 논외로 한다)은 훈장의 원래 취지를 무시한 것이다.

정치권이 대통령의 훈장 셀프 수여를 비판할 여력이 있다면 그 전에 잘못된 제도부터 바로잡는 게 순서이자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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