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삼성 반도체 불산 유출 사고는 최근 10년새 세번째입니다. 지난해 9월 구미에서 유출 사고가 있었고, 지난 15일 청주, 그리고 지난 27일 삼성 사고죠.
불산은 피부에 닿으면 심각한 화상을 입히고 상온에서 기체상태로 들이마시면 신체 마비에 이어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하는 맹독성 화학물질입니다. 하지만 금속까지 녹이는 탁월한 세정력 때문에 전자나 반도체 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질이기도 합니다.
전자산업 발전과 불산사용량 증가는 비례합니다. 삼성전자에서 쓰는 불산량은 정확치는 않지만, 쓰다 남아 대기 중에 희석시켜 배출 시키는 불산량은 정말 방대합니다.
국립환경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불산 대기배출량이 기흥공장은 41톤, 화성사업장은 31톤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5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만명이 넘는 주민들에게 병원 신세를 지게한 구미사고에서 배출된 불산량이 13톤 정도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안전시설을 자랑하는 삼성에서는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불산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유해성은 입증되지 않았지만 '불산 공장'을 '화학폭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영국계 화학회사가 여수 광양항만공사와 '불산 제조공장'을 짓기로 했다가 주민과 환경단체의 우려와 반대로 지난해 말 결국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불산을 사용하는 업체는 경기도 131곳, 서울에 88곳 등 전국적으로 545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까지 합하면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불산이 쓰이는 지는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행정력도 미치지 못합니다.
환경부 조은희 화학물질과장의 말입니다. "예전에도 사고가 났을 수 있지만 전혀 파악이 안되요. 최근에 구미 사태가 터지면서, 아 이게 위험한 거구나…이런 생각에 신고도 하고…아주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신고없이 그냥 끝나 버리는 사고들이 많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은 해요. 화학업종 시설이라는게, 60~70년대 시설 설치가 많아지면서 노후된 시설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리고 작은 영세업체들은 아무래도 관리가 부실하고…."
또 하나 짚어야 할 문제는 많은 영세 불산 취급업체들이 주택가 가까이 있다는 겁니다. 불산을 취급하는 업체라도 반도체와 관련이 있다고 분류돼 주택가 인근에도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산업 발전을 위해 그리고 물류비 절약을 위해 많은 영세 업체가 대단지 공단 근처에 입주해 있고, 보통 우리나라 대단지 공단 주변은 주택가인 경우가 많죠.
불산 취급 업종 자체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이기 때문에 업체가 입주하는 걸 막을 법적 근거도 없고, 주거지에서 얼마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없습니다.
지난해 구미 불산 사태 이후, 정부는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 '대책'을 발표했지만 담당 부처만 지정하는 수준에 멈추었습니다. 유해화학물질은 환경부, 독성가스는 지식경제부, 중대산업사고는 고용노동부가 맡는다는 식입니다.
부처간 눈치보기에 정작 사고가 터지면 누가 중심이 돼 처리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고, 누출 사고의 시발점인 밸브나 탱크 등 유독물질을 담거나 처리하는 설비에 대한 구체적인 법규정도 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장 불산 사용을 줄이거나 멈출 수 없다면, 또 값싼 불산 대체제를 개발해 쓸 수 없다면, 사용 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함께 관리라도 좀 더 엄격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