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민들은 알려주는 것만 알아라?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8대 대선이 끝난 지도 열흘째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조용히 민생 행보를 이어가며 다음 정부의 밑그림을 그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선에 힘을 쓰고 있다. 지난 24일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임명한 데 이어 27일에는 인수위원장을 발표했다. 수석 대변인 임명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인수위원장을 비롯한 나머지 인선은 무난하다는 평가다.

◈ "인선 배경은?"… "말씀 없으셨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 측의 인선 발표 내용과 방식 등을 놓고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24일 오후 5시 45분,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알림]금일 18:00 이정현 최고위원 기자 브리핑 ▶당사 기자실"

비서실장과 대변인 인선 발표가 임박했던 시점이라 당사 기자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문자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당직자 대부분이 24일 당일은 발표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기자들이 바쁘게 전화를 돌렸지만 결국 이정현 최고위원이 마이크를 잡을 때까지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단상에 선 이 최고위원은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께서는 당선인 수석대변인에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남녀 대변인에 조윤선 당 대변인, 박선규 선대위 대변인, 비서실장에 유일호 의원을 임명했다"라고 말했다. 또 "비서실장은 당선인 비서실장이 될 것이고 수석 대변인과 두 남녀 대변인은 당선인 대변인 신분이고 인수위 출범하면 인수위 수석 대변인, 대변인이 될 것이다"라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게 다였다. 기자들이 인선 배경을 물었지만 이 최고위원은 "(박근혜 당선인이) 특별한 말씀 없으셨다"라고 말했다. 인선 절차를 묻는 질문에도 "아는 바 없다"라고 답했다. (신문 마감시간 때문인 듯) 일부 기자들이 늦은 시간에 발표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연유나 이유는 없다. 지금 알려와서 지금 알려드린 거다. 미리 내정됐는지는 모른다. 당선인으로부터 연락 받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오프라인 - SBS 뉴스

◈ "인사에서는 보안이 중요"

시간에 쫓겨 허덕였던 언론사들의 불만이 전달된 때문인지 지난 27일 인수위원장 발표는 사전에 공지가 됐다. 발표는 윤창중 박근혜 당선인 수석 대변인이 맡았다. 윤 대변인은 "오늘은 우선 인수위원장과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청년 특별위원회 위원장 발표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인수위원장에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임명됐다면서 "김 전 소장이 당선인의 법치와 사회안전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뒷받침하고 대통령직 인수위를 통해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당선인의 지원 기구 성격인 비서실장이나 대변인과 달리 차기 정부의 지향점을 상장하는 인수위원장인 만큼 인선 배경 설명도 미리 공들여 준비한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표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윤창중 수석 대변인은 당선인에게서 받아왔다는 인선안을 밀봉한 채 들고와 발표 직전 뜯었다. 윤 대변인은 "인사에 있어서 보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도 지금 여러분 앞에서 공개했다"고 말했다. 또 밀봉은 누가 했느냐는 질문에 "당선인으로부터 받은 명단을, 제가 봉투로 밀봉해서 받아온 거다"라고 부연 설명도 했다.

정리하자면 인사는 보안이 중요해 박근혜 당선인이 준 명단을 스스로 밀봉한 뒤 기자실에 와서 뜯어 발표했다는 얘기였다. 기자들 앞에서 밀봉을 뜯음으로써 사전 유출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보안이 철저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윤 대변인의 조치였던 셈이다.

인사 검증에 보안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인재를 선별해 적확한 자리에 쓰는 것이다. 당선인 측에서 강조하는 '보안'은 인사를 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 일지는 몰라도 그게 '인사의 목적'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 가운데도 언론 하마평에 오른 사람은 아예 인선에서 배제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인사권자의 마음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새로 선임한 사람이 그 전에 택했던 사람보다 못하다면 비판의 여지가 남게 된다.

오프라인 - SBS 뉴스

◈ 알려주는 것만 알아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28일 청와대 회동 브리핑도 예측을 빗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당선인측은 사전 브리핑에서 "국정 전반에 관해서, 특히 심각한 국내외 경제위기, 일자리, 복지, 외교통일 안보문제 전반적인 얘기들, 깊이 있는 얘기들이 오갈 것", "두 분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 자체가 25년만에 탈당 않은 현직 대통령과 당선자가 만나는 역사적 장면이 될 것"이라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40분간의 회동이 끝나고 공식 브리핑을 통해 나온 내용은 박근혜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시급한 민생예산이 통과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대통령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게 전부였다. 브리핑 전체 내용을 보자.

===

청와대 첫 회동 이후에 4시 반에 호주 길라드 총리와 전화통화 있었다. 브리핑 늦어져 사과말씀드린다. 오늘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과 첫 회동은 3시부터 이뤄졌다. 오프닝 인사는 공개석상에서 이뤄졌고, 다 아시리라 생각한다.

두 분의 배석자 없는 단독 회동은 3시 10분부터 50분까지 약 40분간 진행됐다. 저는 회동이후에 박 당선인으로 부터 말씀들었다. 두 분간에 국정인수 위한 전반적인 문제 말씀 나눴다는 내용이다. 특히 박 당선인이 강조한 것은 민생예산이었다.

(박 당선인은) "민생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예산을 통과되도록 대통령께서 협조해주시길 바란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민생예산이 통과돼야 국민들께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민생예산 통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말씀했다.

두분의 말씀중에 강조하신 부분이 민생예산 통과였다.

===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만남을 소개하기 위해 지면을 비워놨던 기자들은 너무나 간단한 브리핑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 이외에는 당선인이 다른 말씀은 안 했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맞다. 인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말씀 하셨고 특히 민생예산 강조하셨다고 했고 다양한 문제 말해서 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진 않았다"였다.

그럼 민생예산이라는 게 어떤 건지 물었다. 답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였다. 국회에서 처리하는 예산안을 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냐는 질문에만 "기재부에서 곤란하다고 안 해주는 예산들이 있어서 그렇다"는 설명이 있었을 뿐이다.

회동 결과에서 당선인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사전 브리핑 때 "국정 전반에 관해서, 특히 심각한 국내외 경제위기, 일자리, 복지, 외교통일 안보문제 전반적인 얘기들, 깊이 있는 얘기들이 오갈 것"이라고 해놓고 정작 회동 후 브리핑 내용이 "두 분간에 국정인수 위한 전반적인 문제 말씀 나눴다", "다양한 문제 말해서 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진 않았다"라는 게 전부라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

경제나 국제 환경이 가뜩이나 어렵다는데 두 국가 지도자가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한 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마찬가지다. 지도자급에서만 오갈 대화 내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이 민생예산 통과에 대한 협조 요청이 전부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거창하게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지 않더라도 두 지도자의 만남에 관심을 기울였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다면 보다 성실하게 응하는 것이 맞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